곤고한 날에 생각하라 (전도서7:11-14)

 

조성모 목사

 

서론:

 

인간을 생각하는 존재라고 말합니다인간은 무엇을 하든지 생각을 합니다이것을 해야 할까 말까 할 경우에도 생각을 하게 됩니다고상한 것을 생각하면 고상하게 됩니다고독한 것을 생각하면 우울하게 됩니다그러므로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격이 달라지는 것입니다마음에 염려와 불안한 생각을 하면 염려가 더 가중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신 말씀처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는 말씀(요한14:1)처럼 평안을 가지면 언제나 평강의 생각으로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그런데 *악인은 그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치 아니하신다 하며 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10:4)에 말씀합니다악인의 마음과 생각에는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이 사상이 확대 되어진 것이 무신론(無神論)입니다.

 

독일의 허무주의 철학자 *니체*(F, Nietzsche)는 하나님은 죽었다라고 선언하였습니다그리고 그는 하나님은 죽어야만 했다고 주장하였습니다그러나 그가 하나님은 죽었다고 하여 하나님이 죽은 것입니까?사람들이 하나님은 존재하신다고 하여 살아계신 것입니까그런 것은 아닙니다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분이십니다그러면 솔로몬의 교훈을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1. 하나님은 물질보다는 지혜를 보존하기를 원하십니다. 11-12

 

여기서 지혜와 지식은 무엇을 말합니까하나님을 섬기고 경외하는 지혜와 지식을 의미합니다내가 내 소유를 보존하는 것보다 하나님 경외하는 지식과 지혜를 더 간직하라는 것입니다지혜가 없다면 유산이 있어도 별 소용이 없습니다아무리 부모로부터 재산을 많이 상속받았다고 하더라도 그에게 주어진 재물을 필요 적절하게 사용하는 지혜가 없다면 어떤 유익도 없는 것입니다지혜는 선하고 유익하며 모든 사람을 쓸모 있는 사람이 되게 합니다지혜 있는 자가 재물까지 겸하여 소유하고 있다면 없는 자 보다 여러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게 됩니다그러므로 지혜는 유산보다 더 아름다운 것입니다그러기에 성경은 *지혜를 얻으며 명철을 얻으라* (4:5)고 하였고 6절에는 지혜를 버리지 말라 지혜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고 말씀합니다그러므로 지혜는 매우 존귀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지혜는 사람에게 기쁨이고 참된 행복이 됩니다그것은 곧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입니다그 지혜가 바로 생명입니다이 지혜는 생명을 연장시킵니다인간의 물질은 사람이 목숨을 위태롭게도 하지만 지혜는 사람의 생명을 보호해줍니다.

 

내가 신앙의 지혜를 잘 보존하는 것으로 인하여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어지는 것입니다우리가 세상에서 살 때에는 물질도 필요하지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될 때에는 믿음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재물은 이 땅에서의 자연적인 삶조차도 연장할 수가 없습니다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는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됩니다진정으로 지혜롭고 선한 자들은 하나님의 보호하심 아래에 있는 것입니다남기고 갈 유산이 돈이 아니요 명예도 권력도 아닙니다하나님 잘 섬기는 신앙심 하나 뿐 인 것입니다죽음 앞에서 아무리 많은 재산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 물질이 자신을 구원시킬 수 있습니까그 돈으로 천국에 갈 수 가 있습니까인간의 생존을 이어주는 물질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돈으로 천국 티켓을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부하든지 가난하든지 건강하든지 병들었든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누구를 막론하고 믿음으로야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전도서 기자 솔로몬은 소유보다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와 지식을 보존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보아야 합니다. (13)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이것을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합니다하나님의 주권이란 *하나님의 단독적인 행사*를 의미합니다.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사람들과 협의하여 일을 이루시는 분이 아니십니다인간은 여기에 전혀 개입되지 않습니다그러므로 하나님이 구부러지게 하신 것은 인간이 바르게 할 수 가없다는 것입니다하나님이 심판을 하신다면 누가 감히 하나님의 진노를 막을 수 있겠습니까만약에 하나님이 이방민족이라도 구원을 주시기로 작정하셨다면 누가 감히 아니요 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이 정하신 자연의 법칙은 누구도 변경시킬 수 가 없는 것입니다바다의 밀물과 썰물 이 모두가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법칙입니다우리 인생들이 살면서 닥치는 모든 일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길 때에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이 이 일들을 통하여 나에게 무엇을 깨닫게 하시는가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그리고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들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우리는 아직 하나님이 하시는 구체적인 일들을 확실히 모릅니다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은 분명히 선하시고 의롭고 최종적으로는 최고의 선을 이루십니다.

 

3. 형통한 날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14)

 

이 세상에는 형통하게 사는 자들과 곤고하고 어렵게 사는 자들로 나누어집니다그런데 중요한 것은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이 모두 사람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개인과 가정과 교회와 국가에 흥망성쇠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환난도 주시고 평안도 주시는 것입니다하나님이 고난을 주시면 평강을 주실 때 까지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 ()이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입으로 나온다고 (렘 애가3:38) 말씀합니다.우리가 믿음으로 살고 하나님 뜻대로 살 때에는 복을 누립니다생사화복이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잘되고 형통하는 것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고 실패하고 망하는 것도 모두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는 것입니다.

 

영국의 매튜 헨리 목사는 우리는 형통할 때에 기쁘지 않은 자 같이 기뻐하고 곤고할 때에는 울지 않는 자 같이 울어야 한다고 해석하였습니다그 이유는 이 두 가지가 서로 자리바꿈을 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자칫 잘못하면 형통한 날에 물질과 건강과 복을 누릴 때에 먹고 마시고 쾌락을 즐기고 사치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잠언 기자 솔로몬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잠언8:13)고 말씀합니다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잘되고 형통하고 번영되어질 때에 더 겸손하고 낮아지는 자세로 하나님을 바로 섬기라는 것입니다이렇게 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9:10)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기본입니다그리고 *항상 경외하는 자는 복되다고(28:14)에 증언합니다종교개혁자 요한 칼빈은 말하기를 사람이 조금 교만하게 되면 항상 우쭐거리는 근성이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형통한 날에 하나님이 복 주실 때에 더 많이 기도하고 경건하게 살아야 합니다형통한 날에 더 뜨겁게 찬송하고 봉사하고 전도하여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멀쩡하다가도 전도하러 가자고 하면 혈압이 오른다고 합니다그래서 혼자만 집에 가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약한 형제까지 함께 데리고 집으로 갑니다이 모두가 사단이 좋아하는 일입니다현재 상태가 여러분에게 형통 하다면 몸과 마음과 정성과 생명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4. 곤고한 날에 생각하는 것입니다. (14)

 

형통한 날이나 곤고한 날이 사실은 하루 뿐 인 것입니다일 일의 형통이 일주일 한 달 두 달 이어질 수 있습니다마찬가지로 곤고한 날도 하루가 열흘 한 달 두 달로 지속될 수 도 있습니다우리 인생들에게 곤고한 날이 있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그렇지 않아도 인생은 출생하면서 부터 늙어가고 병들어 죽어가는 삶입니다성경은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5:7) 고 말씀합니다.

 

인생이 살다 보면 좋은 날 보다는 험악한 날이 많아도 솔로몬은 말씀합니다그는 세상부귀 영화를 다 누린 왕입니다이름 그대로 평강의 왕이기도 합니다그러나 그의 노년에 성경을 기록하면서 인생의 날이 행복한 날 보다는 곤고하고 험악한 날이 많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곤고한 날은 무엇을 의미합니까이것은 고난의 날입니다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고난이 올 때에는 자신을 살피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생각하라는 말이 히브리어 원문은 라아입니다이 말은보다” “자각하다” “느끼다라는 뜻입니다고난을 통하여 자신의 결점과 허물과 죄가 무엇인가를 보고 느끼고 자각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언제 자신을 살필 기회가 있습니까그것은 곤고한 일을 당할 때에 자신을 한 번 살펴보게 되는 것입니다평안하고 형통할 때에는 자기 자신을 깊이 볼 줄을 모릅니다그러나 고난당할 때에는 마음이 약해지기 쉽습니다몸도 허약해 질 수 있습니다.

 

이때를 적신호로 생각하지 말고 자신을 깊이 반성하고 자책하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우리 인생들에게 형통한 날을 주시고 곤고한 날은 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본문 14절 하반 절에 보면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우리 인간은 현재의 일이나 장래에 일어날 일들을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형통의 날이 계속 될는지 아니면 곤고하고 괴로운 고난의 날이 연장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심지어 우리가 언제 죽을는지도 사람은 모릅니다인간의 생명이 호흡이 언제 멈출지는 사람은 알지 못합니다오직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만 아시는 것입니다세상에서 형통한 날이 많으면 자신도 모르게 교만하게 됩니다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의 삶은 어떤 위치에 있더라도 자신을 깊이 생각하고 볼 줄 아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지해서 살아갈 뿐입니다고난이 오든 기쁨이 오든 관계없이 하나님 의지하면서 살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인생이 힘들고 어려울 때에 누구를 생각할 것입니까성경은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았다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씀합니다. (1:9) 나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을 보고 생각할 때가 가장 큰 은혜가 임하는 시간입니다인생의 곤고함과 시련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 보다 중요한 것은 고난의 주님과 영광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인 것입니다곤고한 가운데서도 우리 주님을 바라보고 묵상하며 평강을 얻을 수만 있다면 그것은 은혜인 것입니다고난을 통하여 오히려 은혜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자신을 보다 더 낮추며 살펴보는 겸손의 계기가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낮아지시기 위하여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그리고 자신을 속죄의 제물로 주신 것입니다우리들이 아무리 곤고한 일을 당한다고 하더라도 우리 주님의 고난과는 비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들에게 곤고한 날이 많다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묵상하면서 자신을 깊이 살펴봅시다.그리고 형통한 날이 올 때는 전 보다 더 낮아지고 겸손한 자세로 우리 구주 예수를 더욱 의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