説教
설교
성도의 라이프 스타일
누가복음6:38
이성우 목사
경제학적으로 보면 모든 사람들이 다 잘 사는 사회를 만들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를 경제학의 원리로 하려고 여러 가지 주장을 하였습니다.
칼 막스는 부자들의 것을 빼앗아 가난한 자들에게 공평하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사회주의 이론을 주장했습니다. 그럴 듯 했지만 따라가보니 거기도 역시 정치권력을 잡은 자들이 많이 가지고 못 가진 사람들은 뼈빠지게 일 해 보아도 돌아오는 것이 없으니 노동 의욕을 잃고 적당히 하다가 보니 나라 경제가 파탄이 나서 소련은 70여년만에 국가 부도를 내고 말았습니다.
중국이 지금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라고 합니다만 공산주의를 할 때는 심히 가난한 나라였지만 등소평이 자본주의를 혼합한 공산주의로 궤도 수정을 하였기에 이만한 힘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사람들이 자기가 일한만큼 노력한 만큼 댓가를 받는다고 가장 좋은 경제체제라고 말했습니다만 거기도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2011년에 정치적으로 평화롭던 신사의 나라 영국이 폭력과 약탈이 난무하는 무법국가가 아닌가 할 정도로 폭동이 일어났습니다.자본주의 사회의 빈익빈 부익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폭동이었습니다.
같은 해 미국에서도 뉴욕 월가에서도 똑같은 시위가 발생하여 전지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미국의 상위 1%가 미국전체 부의 50%를 장악하고 있으므로, 일반인들은 매일 아침 일어나는 순간부터 방값걱정,끼니걱정으로 살고 있으니 이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외침이었습니다.
이처럼 오늘날의 세계의 문제는 부의 불균형으로 빈익빈 부익부의 악순환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2013년 10월 현재 아파트를 2채 이상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 19만 4,463명이 있다고 합니다.그 중에 가장 많이 가진자가 한 사람이 277채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이렇게 부의 불균형의 문제가 큰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많이 가진 자일수록 구제하고 베푸는 일에 인색하다는 것입니다.부자들 가운데 자선과 구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2% 안팎이라고 합니다. 어려운 사람의 사정을 모를 정도로 자기만을 위하여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회에 기부하는 기금의 70% 이상은 연봉 2천에서 3천만원, 즉 한달 월급을150~200만 원 정도 받는 사람들의 주머니에서 나온다는 점입니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오늘 성경 말씀은 중요한 삶의 자세를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크리스찬 라이프의 가장 우선 해야할 문제는 분배의 문제임을 말 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을 가르켜 베드로서는 하나님이 선택하신 민족이며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고 합니다. 우리를 어두움에서 불러내어 놀라운 빛 가운데 들어가게 하시고 라이프 스타일을 불신자들과 다르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을 향하여 하나님은 본향을 떠나 잠시 세상을 여행하는 나그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짧은 생애를 살면서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할 것인가를 깨달으며 살아라고 합니다.
성도의 라이프 스타일에 어떠해야 할 것인가 본문을 중심으로 살펴보면서 은혜 받으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 눅6장38절은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성도들의 라이프 스타일은 받는 자가 아니라 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는 자가 있다는 것은 받을 자가 있다는 것을 말 해 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법칙이 있습니다. 물은 높은데서 낮은데로 흘러가는 것이 법칙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도 있는 곳에서 없는 곳으로 흘러가야 합니다. 가진 자에게서 못 가진 자로 흘러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경제학에서는 분배의 문제라고 합니다.
자본주의의 경제원리는 극대화입니다. 작은 투자로 많은 성과를 거두는 것이 경제원칙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경제원리는 극대화(極大化)가 아닌 평균화입니다. 하나님이 광야에서 이스라엘에게 만나를 내려 주시고 그들에게 이를 거두라고 명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들판에서 만나를 거둘 때 어떤 이는 많이 거두고 또 어떤 이는 적게 거두었으나, 출애굽기 16:18에 보면,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고린도 교인들에게 모금하라고 할 때, 그는 하나님의 이 ‘평균(平均)의 경제원리’을 설명합니다. 고린도후서 8:12-14에서,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리라.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평균케 하려 함이니, 이제 너희의 유여한 것으로 저희 부족함을 보충함은 저희의 유여한 것으로 너희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평균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장로교의 창시자 칼빈도 평균의 경제원리에 대해서 말할 때, “부한 자는 그들의 물질적 부를 가난한 자와 나누어 갖도록 부르심을 받았고, 가난한 자는 영적 부를 부자와 나누어 갖도록 부르심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부자는 가난한 자들에게 물질적 풍요를 나누어주는 일군(διάκονος)이요, 가난한 자는 영의 풍요로움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될 때, 그 사회는 물질적, 영적인 부가 평균화되고 모두가 형편이 더 좋아지는 사회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공유생활을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2:44이하에 보면, “믿는 사람들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즉,그들은 그리스도라는 한 몸의 지체로서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생활을 한 것입니다. 평균화 경제원리에 따른 생활이었습니다.
자본주의(Capitalism)는 각자가 자신의 능력에 따라 벌어서 자기가 번 것으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소비하는데, 한 가지 단점은 빈부의 격차가 갈수록 커진다는 것입니다.
공산주의(Communism)는 각자의 능력에 상관없이 똑같이 벌어 똑같이 사용하자는 것인데, 이상적인 것 같지만 능력이 많은 사람의 일할 의욕을 저하시켜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따라서 사회 전체가 빈곤(貧困)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는 평균화의 경제원리가 실현되는 사회는 개인의 능력이나 성취욕을 제한하거나 무시하는 공산주의와는 근본이 다릅니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하에서 교회를 중심으로 자본주의의 취약점을 보완하게 합니다. 평균화 경제원리의 실행은 정부나 기타 권력기관의 강제적 혹은 물리적인 법집행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이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고린도후서 8:1-5: 마게도냐 교회의 모범).
공생주의는 자기 능력껏 일하여 일한 만큼 벌어서 각자의 필요에 따라서 나누고 통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평균화 경제원리에 따른 삶이라 할 것입니다.
몇 년 전에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에서 20세기 인류 역사에 큰 공헌을 한 100명의 인물을 선정했는데 정치,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 종교를 망라한 100인 중 경제학자로서는 유일하게 케인즈가 선정되었습니다.
케인즈의 이론은 한마디로 유효수요론입니다. 다른 경제학자들은 이윤을 극대화하는 투자이론들을 주창하는데 비해, 케인즈는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 그것이 넘치게 하라는 것입니다.
케인즈는 유효수요론을 주장하면서 정부의 보이는 손의 역할을 강조합니다. 그가 드는 예를 보면 정부는 빈병에 돈을 가득히 넣어서 폐기된 탄광의 땅 속에 깊이 묻어둡니다. 그리고 그 위에 쓰레기로 덮은 다음에 기업들로 하여금 땅 속에 묻어 둔 돈을 마음대로 퍼 가라고 합니다. 그러면 기업들은 저 마다 사람들을 고용하고 굴삭기를 동원하여 땅을 파고 병속의 돈을 꺼내려고 할 것입니다. 그 덕분에 일자리를 얻은 사람들은 월급으로 고기도 사고 옷도 사는 등 소비 활동을 합니다. 그러면 뭠췄던 공장들이 다시 가동되고 모든 산업이 연쇄적으로 살아나 경제 상황이 회복된다는 것입니다.
그의 이론에 따라 미국은 1930년대에 대공황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가 후버댐을 만들면서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마련하여 공황을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좀 더 쉬운예를 들어 보면 한 시골마을에 가난한 사람들이 몇 백 가구 살고 있는데, 소를 백 마리 정도 키우고 있는 돈 많은 부자가 목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경제 이론에 따른다면 목장을 어떻게 운영하면 될까요? 그 시골 마을에서 소고기나 우유, 치즈 등을 사려면 이 목장에서 살 수밖에 없으니 독점적 상황입니다. 경제적 극대효과를 누리려면 값을 올려야 하고, 공급을 조절하여 최대의 이윤을 창출해야 합니다.
그러나 케인즈는 목장의 생산물을 싼 값으로 저렴하게 베푸는 것이 경제적으로 더 많은 부를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더 많이 주어서 넘치게 하라는 것입니다. 소 백 마리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높은 가격으로 책정해 버리면 사람들이 우유나 고기가 먹고 싶어도 못 먹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점점 우유와 소고기의 맛을 잊어버릴 것이고, 나중에는 우유나 쇠고기 먹을 생각을 아예 하지 않고 다른 방도를 찾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행사를 통해 저렴하게 공급하거나, 특별 세일을 하면 사람들은 그 목장에서 생산하는 유제품이나 소고기에 익숙해집니다. 그러면 더 많은 수요가 생기기 때문에 소수를 상대로 비싸게 파는 것보다, 다수를 상대로 많이 팔아 시장의 규모를 키우는 것이 생산자에게 더 유익하다는 이론입니다.
결과적으로 그 마을의 경제가 발전하게 되고, 모두가 윤택해진다는 상생공존의 이론입니다.
복음 전도자 루이스 팔라우는 흙의 비유를 들어 교회의 본질을 설명합니다.
교회란 거름과 같다고 합니다.거름은 한 곳에 쌓아두면 이웃에 악취를 풍깁니다. 거름 위에서는 아무것도 살지 못합니다.그러나 땅에 골고루 뿌리면 세상을 비옥하게 합니다.모든 식물을 건강하게 살립니다.이처럼 거름은 모아 놓으면 죽게 하고 뿌리면 살게 합니다.
우리가 베풀며 사는 만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 좋은 것으로, 더 많은 것으로 베풀어주십니다.
전도서11장1절에는 "네 빵을 물위에 던져라 여러날 후에 도로 거두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전도서11장 2절은 더 실제적으로 가르쳐줍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어느 날 어떤 재앙이 닥칠지 모르니까, 최소한 일곱, 여덟 명에게 베풀며 살라고 합니다.
최대한 베풀며 살므로 인간관계를 넓혀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자신이 어려운 형편에 처했을 때 여러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미래 투자원리입니다.
베풀며 사는 선행이야말로 하나님께 보상 받는 "거룩한 투자"입니다.
예수님께서 베풀며 사는 자의 풍성한 미래를 보장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현자가 세 가지 종류의 주는 자가 있다고 풍유적으로 설명합니다.
부싯돌과 같이 차가운 마음으로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엇이라도 얻으려면 망치로 때려야 나옵니다.
스펀지처럼 마지못해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무엇을 얻으려면 꽉 누르고 짜야 나옵니다.
벌집처럼 넘쳐나게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항상 달게 주는 사람입니다. 기꺼이 주고, 아낌없이 줍니다.
주는 것이 풍요로운 삶을 사는 비결이 됩니다. 갈릴리 바다처럼 주는 삶을 살면 우리가 얼마든지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주라!"고 말씀하시면서 아무런 조건도 덧붙이지 않으셨습니다.
누구에게 주라는 것입니까?
스데반 집사를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습니다. 그는 동료들에 의해서 억울하게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를 돌로 치는 원수들까지도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었습니다.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그가 원수까지라도 사랑해 주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 줄 때 그 마음이 얼마나 풍요로웠겠습니까? 그 고통 속에서도 스데반 집사의 얼굴은 천사처럼 환하게 빛났다고 했습니다. 주는 자가 복이 있는 것입니다.
언제 줍니까? 있을 때만 주고, 없을 때는 안주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아무 때라도 주라는 것입니다.
내가 주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기 위해서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 그곳에는 태어나면서부터 앉은뱅이된 자가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무엇인가 바라는 심정으로 베드로와 요한을 주목해서 보았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무엇이라고 소리쳤습니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을 너에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 걸어라!"
베드로가 외칠 때 그는 벌떡 일어났습니다.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그는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언제든지 주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곳에는 풍요로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어디에서 줍니까? 어디에서든지 주라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주는 삶을 살고, 직장에서도 주는 삶을 살고, 학교에서도 주는 마음으로 살고, 교회에서조차도 우리가 늘 주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복있는 사람입니다.
그 다음에 생각할 문제는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입니다.
주는 자에게 그 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신다고 합니다.누가 주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좋은 것으로 보상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거짓말을 아니하십니다. 우리에게 빚지고 살지 아니하십니다. 반드시 갚아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누구에게 사랑을 베풀어주었는데 주어도 아무런 소용도 없더라! 인사도 안하더라! 감사의 말 한 마디 없더라!"고 적절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섭섭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 사람의 손이 크겠습니까? 하나님의 손이 크겠습니까? 당연히 하나님의 손이 더 크시지요. 그러니 하나님이 보상해 주시고 하나님이 갚아주시는 것이 더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에게서 보상받지 못했다고 해서 섭섭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갈6:9참조)
19세기 중엽 미국에 록펠러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릴 때 이런 결심을 했습니다. "나는 장차 이 세계에서 제일 돈을 많이 번 갑부가 되리라."
그래서 그는 철이 들면서부터 돈을 버는 일에 완전히 혈안이 되어서 살았습니다. 그는 일찍이 유전에 손을 대었습니다. 그리해서 33세라는 젊은 나이에 스탠다드 석유회사의 사장이 되었습니다.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백만장자의 대열에 이미 올라서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10년 뒤 43세에, 그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대규모의 트러스트를 형성해서 세계에서 가장 큰 재벌기업의 총수가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10년 뒤 53세에, 그는 세계에서 단 한 명밖에 없는 억만장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소원대로 세계에서 제일 가는 갑부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만족하지 않고, 계속해서 돈벌레처럼 돈을 버는 일에 동분서주했습니다. 돈은 많지만 결코 풍요로운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쓰러졌습니다. 불치병에 걸렸습니다. 머리카락이 다 빠져버렸습니다. 잠을 자지 못해서 불면증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음식을 먹어도 소화가 되지를 않습니다. 그가 하루에 먹는 것은 기껏해야 우유 한 잔과 비스킷 몇 조각이 전부였습니다. 의사는 그를 진찰해 보고 일년을 넘기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진단을 내렸습니다.
그는 그 동안 돈 버는 일에만 혈안이 되었기 때문에 그의 원수도 많았습니다. 그가 죽기를 바랬던 사람이 그만큼 많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드디어 그는 죽음을 눈앞에 앞두고 자신의 삶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평생 처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놓고서 한 마디 한 마디 깊이 묵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결정적으로 자기의 삶의 잘못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그의 삶을 180도 바꾸게 했던 구절입니다.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지금까지 움켜쥘 줄만 알았지 손을 펼 줄을 몰랐습니다. 주는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모으기는 많이 모았는데 풍요로운 삶을 살지 못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심정으로 드디어 손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재산의 일부를 교회에 헌금했습니다. 사회적으로 뜻있는 일에도 많은 금액을 희사했습니다. 그는 돈을 기부해서 시카고 대학도 세웠습니다. 드디어 1931년에는 자선사업을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서 록펠러 재단을 만들었습니다. 그 뒤 그는 계속해서 뜻있는 일에 엄청난 돈을 썼습니다.
그가 손을 펼치고 나니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의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잃었던 잠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입맛도 돌아왔습니다. 건강도 서서히 회복되었습니다. 의사는 분명히 54세를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록펠러가 얼마나 살았는지 아십니까? 98세까지 건강한 몸으로 장수했습니다. 일평생 동안 그가 자선사업에 희사한 돈이 5억 달러가 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다섯 아들을 통해서 수십 억 달러가 자선사업을 위해서 쓰여졌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무슨 모양으로든지, 누구를 통해서든지 하나님께서 반드시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빚지고 살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주는 삶을 살 때에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으로 갚아주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주신되 보통 주신 것이 아닙니다."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손길이 얼마나 풍성한지, 예수님은 다섯 가지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첫째로, "후히 되어"입니다. 여러분, 옛날에 쌀가게에 가면 쌀장사가 쌀을 어떻게 되어줍니까? 위를 싹 깎아서 제일 끝에 0.5cm정도 산 모양으로 만들어 주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실 때 그렇게 주지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후히 되어." 많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누르고"입니다. 꾹꾹 눌러서 조금이라도 더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셋째로, "흔들어"입니다. 곡식과 곡식 사이에 빈틈이 하나도 없도록 하나님께서 채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넘치도록 하여"입니다. 쌀을 되면서 양쪽에 떨어지는 것을 구애하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시는 것을 절대로 아까워하지 않으시고, 조금이라도 더 주시려고 하십니다.
다섯째로, "안겨주리라"입니다. 우리가 찾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하나님이 직접 찾아오셔서 하나님의 축복을 한아름 우리의 품에 안겨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만큼 하나님의 손길은 풍성한 손길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결론을 내리셨습니까?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십니다.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됫박이 작으면 받는 됫박도 작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됫박이 크면 클수록 훨씬 더 큰 됫박으로 되돌려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물질을 바치거나 우리 이웃들에게 도움을 줄 때, 이것저것 따지면서 헤아릴 필요가 없습니다. 헤아리지 말고, 따지지 말고, 정성을 다해서 도와주고, 또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더 큰 것으로 우리에게 보상해 주시니까요.
옛날 어떤 나라에 한 임금님이 변장을 했습니다. 그리고 민정시찰을 나갔습니다. 어느 동네에 갔습니다. 거지가 나타났습니다. 거지는 임금님인줄 모르고 변장한 임금님에게 와서 무엇인가 구걸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임금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조건 얻어먹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그러니 지금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무엇이든지 먼저 내게 주시오. 그러면 내가 그 대가로 더 좋은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거지는 가만히 생각했습니다. 때마침 그의 주머니에는 구걸해서 얻은 옥수수 알갱이가 한웅큼 들어있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다 주려고 하니까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부스럭 부스럭거리다가 5∼6알을 꺼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은 이것이 다입니다."
그러면서 그것을 변장한 임금님에게 주었습니다. 임금님은 품속에서 주머니 하나를 끄집어내었습니다. 그 속에는 조그마한 금덩이들이 많이 들어있었습니다. 임금님은 그 가운데서 자기가 받은 강냉이 알갱이 수만큼 금덩이를 끄집어내어서 그것을 거지에게 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 당신이 내게 주었으니까 나도 약속대로 이것을 당신에게 줍니다."
물론 거지는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속으로 얼마나 원통한 생각이 들었겠습니까?
"이까짓 강냉이! 다 주었더라면 저 금 주머니를 통째로 내가 받는 건데......"
거지는 무척이나 속이 상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십니다. 우리가 심은 그대로 거두게 하시는 것입니다.
일본의 여류작가 미우라 아야꼬는 작가가 되기 전에 동네에서 가게를 했는데, 장사가 너무 잘돼서 나중에는 트럭으로 물건을 공급해야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어느 날 퇴근한 남편이 “여보, 우리 가게 장사가 너무 잘돼서 이웃 가게들이 문을 닫을 지경이 되었으니 참으로 안타깝소. 이것은 하나님 뜻에 어긋나는게 아니겠소?”하고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이 말에 자극을 받은 미우라 아야꼬는 상품을 다 갖추지 않고 손님이 오면 이웃 가게로 보내주곤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나자 소설을 써서 응모하여 당선이 됐습니다. 그 당선작이 유명한‘빙점’이라고 합니다. 이로 인해 가게에서 번 돈보다 몇 백 배의 더 많은 돈을 벌었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도움을 베풀 때, 친절을 베풀 때, 사랑을 베풀 때, 또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를 베풀 때, 이것저것 헤아리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시는 것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셔서 늘 주기를 기뻐하는 크리스찬의 삶을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총으로 한 번뿐인 우리의 삶이 더욱더 풍요롭게 전개되기를 바랍니다.
2013.10.20. 오전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