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講解

趙聖模 敎授 (大阪長老會神學大學/大學院)

<!--[if !supportEmptyParas]--> <!--[endif]-->

<!--[if !supportEmptyParas]--> <!--[endif]-->

에베소서는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와 함께 바울이 감옥(옥중)에서 기록한 서신이다. 본서(에베소서)는 교회를 설립한 하나님의 목적과 그리스도를 중심한 공동체로서의 교회에 관한 교리를 기록한 것이다. , 현실 교회가 구원을 성취시키는 바른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한 통일이 필요함을 에베소서는 강조한다. 에베소서를 크게 둘로 나누면 1장부터 3장까지는 무엇을 믿는가? (유기체 공동체로서의 교회)이고 4장부터 6장까지는 어떻게 생활할 것인가? (성도의 바른 신앙생활)이다. 그러므로 에베소서의 주제는 하나님의 구원과 교회생활이다.

1, 내용구분

1:1-14 삼위(三位)하나님의 구원계획

1:15-23 성도(聖徒)를 위한 기도

2:1-3:13 성도의 구원(救援)과 교회의 본질

3:14-21 교회를 위한 기도

4:1-16 교회의 일치

4:17-5:21성도들의 새 생활

5:22-6:9 가정생활

6:10-20 성도의 영적전쟁 (靈的戰爭)

6:21-24 결론

<!--[if !supportEmptyParas]--> <!--[endif]-->

2. 저자:바울

3. 기간: 주후(AD 61-63)

에베소서는 넓은 의미에서는 교회론(敎會論)이고 좁은 의미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강조한다. 그러면 먼저 교회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교회는 눈에 보이는 지상교회가 있고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천상교회(하늘나라)가 있다. 교회는 사람이 만든 공동체가 아니다. 교회는 부름받은 성도들의 모임 자체이다. ,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을 받은 성도들의 모임이 교회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란 말이 35회 기록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원하셨고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몸된 교회에 여러 가지 은사를 공급하심으로 교회가 유지되게 하신다.

4. 핵심단어: 그리스도 안에(in christ)

5. 핵심요절: 1:10

6. 핵심장: 4

<!--[if !supportEmptyParas]--> <!--[endif]-->

1:1-6 구원의 은혜를 찬양하는 성도

1) 성부(聖父)하나님의 사역(使役) 1:3-6 “선택(選擇)하심” 4창세전에선택하신 목적은?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즉, 온전하게 하신다는 뜻이다. 종교개혁자 요한 칼빈(John, Calvin)하나님의 선택은 자유로운 것이기에 인간의 모든 가치와 업적과 덕을 제거하고 무효화(無效化) 한다고 하였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무엇을 찬양할 것인가? (4-5) 나를 사랑하사 예정하신 하나님을 찬송하자 (43:1) 예정(豫定)이란 말은 미리 정했다는 뜻이다. (8:30) 어떻게 사랑하셨는가? (5) 하나님의 아들 삼으려고(5)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아들 삼는다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 (15:7, 19-21,24)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께 찬양하여야한다. (43:21, 4:5-6)

<!--[if !supportEmptyParas]--> <!--[endif]-->

1:7-12 구원의 은혜를 찬양(讚揚)하는 성도(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나를 십자가로 구원하신 그리스도를 찬양하자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있을 수 없다. 바울은 환경을 초월하여 옥중에서도 감사 찬송하였다. 사도 바울은 세 번이나 감옥 생활을 하였다. (가이사랴 빌리보에서 한 번 로마에서 2) 에베소서는 로마 옥중에서 기록하였다. 바울은 이 사실을 바로 알았기 때문에 옥중에서도 감사 찬송을 하였다.

찬송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찬송할 때에 기적이 일어난다. (16:22-26)

하나님은 찬송을 원하신다. (43:21)

본문에서 (1:6, 12,14) 찬송이 나온다. 주님의 피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찬양하여야한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1) 속량(贖良) 이 무엇인가?

7절의 죄 사함이란 문자적으로 우리의 죄를 멀리 보낸다는 뜻이다. 구속이란 지불했다는 뜻이다. “값 주고 사다라는 의미이다. 전쟁의 포로나 노예를 그 몸 값을 지불하고 살려주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모든 죄 값을 그의 피로 지불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지불하신 값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이다.

(20:28, 3;25)

영국의 스펄전(C, H. Spurgeon)목사는 말하기를 우주 창조는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하셨다면 구원역사는 하나님의 양팔로 하셨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3-14절 까지 사랑이란 말이 1그 안에란 말이 3그리스도 안에서란 말이 7번 기록되어있다. “그리스도 안에서가 중심적으로 강조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선택과 성령의 보증도 중요하지만 구원을 실제로 이루어 가시는 분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죽으실 수가 없다.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죽으실 수 있기 때문이다.

6:23죄의 삯은 사망이다

9:22에는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1:7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if !supportEmptyParas]--> <!--[endif]-->

2) 은혜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호의(好意)이며 무조건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3:16)

은혜란 죄인을 향하신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그것을 아가폐(Agape)라고 말한다. 이 아가페의 사랑을 십자가로 보여주신 것이다. (5:8)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만한 공로나 자격이 없는 자들이다.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 아니하면 구원을 받을 자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고 찬송하자

<!--[if !supportEmptyParas]--> <!--[endif]-->

3) 통일이 무엇인가? 10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통일(統一)이 무엇인가?

한 허리 밑에 모은다는 뜻이다. 그러면 머리는 누구인가? 그리스도이다. ,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다주님이 언젠가는 만물이 그가 머리이심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나를 구속하신 주님을 찬양하자 (1:12; 1:11)

<!--[if !supportEmptyParas]--> <!--[endif]-->

1:13-14 하나님의 소유가 되게 하신 성령을 찬송하자 (나를 인()쳐 믿게 하신 성령)

13절에 너희는 누구인가? 너희는 그리스도를 믿게 된 이방인들을 의미한다. 그러면 14절에 우리는 유대인을 의미한다. 13절에 성령의 사역이 나온다.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여기서 듣고, 믿어, 인치심을 받는다는 것은 삼단계로 나누는 것이 아니다. 원문에는 이것이 동시적인 사건이다.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어 성령의 인치심을 받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말씀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을 쳤다는 것은 도장을 눌렀다. 싸인(sign)했다는 뜻이다. , “소유를 의미한다. (고전12:3) ,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라고 성령으로 확인 시켰다는 뜻이다. 오늘날 우리들을 성령으로 사인하였다는 뜻이다. 그러면 우리가 언제 성령의 인()으로 친 것을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예수를 나의 구주(救世主)로 믿는가? 라고 물을 때에 진심으로 하면 그는 성령의 인()을 받은 자이다.(고전12:3) 그런데 이 인()은 한 번만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라고 한 자가 잘못된 길로 걸어 성령을 근심시켜서는 안 된다. 왜 우리에게 인()을 쳐 주시는가? 14절에 보면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고이다. 주님의 삼대 명령이 있다. 이것을 꼭 기억하자.

<!--[if !supportEmptyParas]--> <!--[endif]-->

믿으라 (예수 그리스도)

받으라 (성령 하나님)

기다리라 (재림의 주 예수 그리스도)

결론:

1) 나를 사랑하사 예정하신 하나님을 찬송하자

2) 나를 십자가로 구원하신 주님 (예수 그리스도)을 찬송하자

3) 나로 믿게 하시고 인()쳐주신 성령 하나님을 찬송하자

시편150:6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할렐루야!

<!--[if !supportEmptyParas]--> <!--[endif]-->

1:15-20 구원받아 기도(祈禱)하는 성도

<!--[if !supportEmptyParas]--> <!--[endif]-->

기도는 성도가 사는 길이다. 기도하면 힘이 생긴다.

기도는 세 가지를 표현한다. (딤전2:1-2)

1) 기도(祈禱): 하나님의 자녀가 교제하는 일반적인 기도

2) 간구(懇求): 역시 기도이나 위급할 때 매달려 하는 기도

3) 도고: 다른 사람을 위한 협력(協力)의 기도 (삼상12:33)

우리는 흔히 남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한다고 말을 많이 한다. 그러나 이 말은 조심하여야 한다. 우리 주님만이 제자들을 위한 중보기도가 나온다. (17장 참조)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중보자이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만이 중보기도를 하신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2. 기도의 자세

1) 구원의 은혜를 믿고 기도하자

15절에 보면 이 말이여이것은 구원의 은혜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구원의 은혜를 믿고 기도하자.

2) 감사함으로 기도하자

16절에는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감사와 기도는 필수적이다. 사도바울의 감사가 무엇인가? 15절에 나온다.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이다. 15절의 사랑이란 무엇인가? 성도 서로간의 사랑이요, 다른 사람과의 사랑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이다. (1:4)

<!--[if !supportEmptyParas]--> <!--[endif]-->

3. 기도의 내용

1)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17

지혜(智慧)와 계시(啓示)의 영을 주시기를 기도하라 여기서 계시의 영은 성령(聖靈)이다.

(1:3-6;고전2:10;1:6) 참조

<!--[if !supportEmptyParas]--> <!--[endif]-->

2) 마음의 눈이 밝아지는 것이다. 18

이것은 지성의 눈을 의미한다. (1:21) 어떻게 하여야 마음의 눈이 밝아지는가? 지혜와 계시의 성령을 주셔야한다. ,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혜와 성령을 주셔야 된다. 그래야 마음의 눈, 지성의 눈이 밝아지는 것이다. 그러면 마음의 눈이 밝아져서 무엇을 알기를 원하는가? 18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라고 말씀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의미한다. 기독교는 소망의 종교이다. (고전13:13) 특히 나 같은 자를 불러 사용하신다. (고전1:26-29)

<!--[if !supportEmptyParas]--> <!--[endif]-->

3) 풍성한 열매를 아는 것이다. 18(8:19; 벧전1:4)

4) 크신 능력을 아는 것이다. 19-20

힘은 내적이며 본질적인 것을 의미한다. , 위대한 능력을 말한다. 19절에 역사하심은 초인간적(超人間的)능력을 말한다. 그리고 20절의 그의 능력하나님만이 사용하는 힘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팔이 행위로 나타날 때의 표현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1:20-23 하나님의 능력

1.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20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2:32)

2. 예수는 부활하시고 왕 노릇하신다. 20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바울은 그리스도의 주권(主權,Lordship)이 현세대 뿐 만 아니라 오는 세대까지 영향력을 준다고 말씀한다.

(고전1:20, 2:6,8; 고후4:4; 1:4; 2:2;딤전6;172:12)

<!--[if !supportEmptyParas]--> <!--[endif]-->

3. 교회의 머리가 되게 하신다. 22

교회가 그리스도의 충만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23절 그것은 교회가 그리스도를 충만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가 교회를 충만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2:1-3 구원받기 전에 성도의 상태

1. 구원받기 전의 상태는 한 마디로 하나님을 떠난 생활을 하였다.

1) 죽었던 것이다. 1절 죽었다는 것은 육신적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하나님과 단절(斷絶)된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육신적으로 건강하다고 영적으로 건강한 것이 아니다. (3:1) 왜 죽었는가? 허물과 죄로 죽었다. (1) 허물이란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 , 잘못된 발걸음과 경계선을 이탈하고 넘는 것을 의미한다. 올바른 길에서 벗어난 것을 말한다. 이것은 개인적인 행위와 관계가 있다. 죄란 표적에서 빗나간 것을 의미한다. 활을 쏘는 자가 목표를 맞추지 못한 것을 말한다. (2:17; 3:23, 6:23) 그러므로 죄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이다. 그리고 허물과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인간적인 면에서의 실패를 의미한다.

2)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 3

이 말은 육체의 욕심을 따라 생활하던 상태를 의미한다. 욕심은 금지된 것을 갈망하는 것이다. (3:2-6) 여기서 육체는 타락한 인간본성을 말한다. 또한 우리는 본질상 진노(震怒)의 자녀였다. “자녀진노를 받는 자” “생산 한다” “생기다에서 나온 말이다. 그리고 천성적으로란 뜻이다.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죄에서 출생하였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뜻이다. , 태중에 있는 아기도 죄인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진노는 하나님의 진노이다. 본질상 인간의 진노의 자녀였다. (2:1-3:20, 5:12;4:8) 그러므로 구원받은 은총에 감사하자.

<!--[if !supportEmptyParas]--> <!--[endif]-->

<!--[if !supportEmptyParas]--> <!--[endif]-->

2:4-9 구원받은 성도의 상태는 어떠한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 4

하나님을 가리켜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라고 말씀한다.

(3:16; 5:8; 요일4:8)

긍휼(mercy)은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한다. 사랑은 하나님이 죄인들을 위해 향하신 동기를 말한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2. 그리스도와 함께 한다.

1) 5절 함께 살리셨고: 부활(復活)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실 때는 우리가 죽어있던 상태이다.

2) 6절 함께 일으키사: 승천(昇天)을 의미한다.

3) 6절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하늘 보좌(寶座)에 앉아있음을 의미한다.

(3:20; 3:2-3)

<!--[if !supportEmptyParas]--> <!--[endif]-->

3. 구원(救援)을 받은 자이다. 8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설명할 때에 그 은혜에 의하여라고 말한다. (5:20; 4:7; 딤전1:14; 고후7:4) 그리고 믿음도 나의 믿음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이다. 그러므로 구원도 내 노력(努力)과 공로(功勞)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膳物)이다. 하나님의 선물은 인간의 대가로 받는 것이 아니다. 행위 구원(行爲救援)이 아니다. (9)

<!--[if !supportEmptyParas]--> <!--[endif]-->

2:10 구원받은 성도가 할 일은 무엇인가?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10

1. “만드셨다는 말은 지으셨다는 뜻으로 재창조를 의미한다. 하나님이 처음 창조는 흙으로 하셨고 재창조는 주님의 보혈로 하셨다. (고후5:17)

2. ? 우리를 재창조 하셨는가? 10절에 선한 일을 위하여이다

3. 선한일이 무엇인가?

선한일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다. (5;16, 19:16-19)

<!--[if !supportEmptyParas]--> <!--[endif]-->

2:11-22 소망(所望) 중에 연합(聯合)된 교회

성경에 보면 이 땅에 있는 자들은 다 집을 짓는 자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집을 짓고 있는가? 본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교회를 지어가기를 원하고 계신다. (21)

11그 때에” 12절에도 그 때에가 나온다. 그 때에는 그리스도가 성육신(成肉身), 인간의 몸을 입으시기 이전이다. 그리고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를 알기 이전의 시기이다.

13절에 이제는 2:1-10까지는 나 한 사람이 어떻게 구원 받았는가를 소개하고 있다면 2:11-3:21까지는 구원받은 공동체인 교회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그 때에는 소망이 없었다. 12

1-3절에는 그 때에는 진노의 자녀이었다고 강조한다. 11-12절에서는 구체적으로 소망이 없음을 소개한다. , 육으로는 이방인(異邦人)이었다. 이스라엘이 선민이라면 우리는 선택 밖의 민족이었다. 따라서 선민(選民)이 아니었기에 할례(割禮)를 받지 아니한 무리였다. (11) 그리고 그리스도 밖에 살았다. (12) 그리스도와는 전혀 관계가 없이 살았다.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었다. ,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민족 밖의 사람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 밖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약속과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다. 또한 하나님도 없었다. 한마디로 가장 불쌍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바울은 이방인들이 무신론자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신()을 섬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진정한 하나님을 모르는 상태에 있었다. 하나님은 대자연을 통하여 인류에게 계시(啓示)해 주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깨닫지 못하고 우상을 숭배하게 된 것이다. (14:8-18; 1:18-25)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는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없이 죽었던 자들이다. 그러므로 소망이 없는 자였다. 소망이 없다는 것은 절망이다.

이제는 소망이 있다. 13

멀리 있던 너희가는 소망이 없던 너희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 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망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소망이 생겼는가? (14)에 보면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에게 화평을 주신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화평이시다. (9:6, 52:7, 53:5, 57:19; 미가5:5; 9:10)

<!--[if !supportEmptyParas]--> <!--[endif]-->

옛날 노예제도를 폐지시켰던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 이다. 한국의 남,여 차별(差別) 문제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해결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죄인들이 화평의 길을 찾았다. 선민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담이 무너졌다. 그리고 형제간에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 (9:22)

1)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다.

14절에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15절에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다.(5:17; 10:4) 이것은 그리스도의 사역이 완성된 것을 의미한다. 요한 칼빈은 이방인들이 은혜의 교제에 동등하게 영입(迎入)되어 그들이 더 이상 유대인들과 다르지 않을 뿐 아니라 차이의 표식(標式)이 제거되었다고 하였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2)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님께 화목시켰다. (16) 그리고 기억할 것은 18절에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이란 말은 성령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한다. 접근한다는 뜻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4. 이제부터 할 일이 무엇인가? 19-22절은 주님의 피로 소망을 가진 자의 할 일을 말한다. 19절에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2:10절에 선한 일을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면 이곳에서는 구체적으로 소망 중에 교회를 건축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 구원받은 성도는 각각 성령의 전(殿)이니 잘 간직하여야한다. 또 성령의 전을 가진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는 성령으로 연합하여 형성되어야한다. 그러므로 교회라고 강조하는 교회는 눈에 보이는 건물 예배당을 말하지 않고 부름 받은 성도들이 연합된 그 공동체 자체를 말하고 있다. (고전3:16, 6:19)

그러면 그 교회가 할 일이 무엇인가?

<!--[if !supportEmptyParas]--> <!--[endif]-->

1) 터가 든든하여야한다. 20

집터가 약하면 그 집은 무너진다. 그러므로 반석(盤石)위에 집을 지어야한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란 하나님의 말씀위에 서는 것을 의미한다. (7:24; 딤전3:15)

<!--[if !supportEmptyParas]--> <!--[endif]-->

2) 모퉁이 돌을 놓아야한다. 21

건축에 있어서 모퉁이 돌의 역할이란 벽돌집을 건축할 때 필요한 것이다. 터와 벽돌의 연결역할(連結役割)을 하기 때문이다. ,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 기초가 되어야하고 중심과 주인이 되어야한다. (1:22) 사람이 교회를 좌우하면 안 된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3) 연결되어야한다. 21

터와 벽돌이 벽돌과 벽돌이 연결되어 벽이 이루어지고 벽과 지붕이 연결되어야 비바람에 흔들리지 아니한다. 중요한 것은 연결이란 단어는 원문에 현재 분사형이다. 지속적인 연합사역(聯合使役)을 의미한다. 모퉁이 돌은 은밀하게 희생하는 역할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건축자들에게 버린 돌 같이 멸시를 받았다.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헬라인들에게는 수치스러운 자가 되었다. 그러나 모퉁이 돌, 주춧돌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건물은 세워지고 교회가 창립된 것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5.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연결이 되는가?

1) 주 안에 있어야한다. 21

2) 성령 안에 있어야한다. 22

결론:

()에는 죽은 자와 같이 소망이 없었으나 이제는 그리스도의 필로 소망이 있으니 이제부터는 감사함으로 교회를 건축하여 나가자!

3:1-7 사명(使命)을 감당(勘當)하는 교회

3장에는 사도바울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바울의 사명감 1절에 갇힌 자의 바울은 그가 감옥에 투옥되어 있음을 소개한다. 때는 제1차 투옥의 때임으로 주후 61-62년으로 본다.

1) 누구를 위한 일군인가? 1절에 보면 이방인을 위하여바울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있다. (1:1, 21)

2) 이방인을 위해 무엇을 하려고 택하였는가? 7이 복음을 위하여

3) 어떤 힘으로 7그의 능력이 역사(役事)하시는 대로” (4:13)참조

<!--[if !supportEmptyParas]--> <!--[endif]-->

3:8-13 사명 감당을 위한 바울의 태도(態度)

겸손(謙遜)이다. 8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20“19; 고전15:8; 딤전1:15) 주경신학자 랑게“( Lange)는 겸손은 십자가 밑에 머무는 것이라고 하였다. 기독교의 미덕은 겸손이다. 어거스틴(Augustine)의 제자들이 선생에게 물었다. 기독교의 미덕이 무엇인가? 에 대하여 첫째도 둘째도 겸손이다. 라고 대답하였다. 겸손이 무엇인가? 낮아지는 것이다.(2;1-4)

사명을 바로 알았다. 8절 하반절, 11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이다. 이것을 이방인에게 전하게하신 것이다. (20:24; 1:1, 12:4)

3. 담대(膽大)하였다. 12-13

담대하다는 것은 용기가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확신(確信)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 하나님의 사랑 까닭에 나의 나 된 것을 확신한다는 것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3:14-21 교회 성숙(成熟)을 위해 기도하는 교회

사탄의 세력이 우리를 할 수만 있으며 넘어뜨리려 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 사명을 맡은 우리의 자세는? 14절에서 21절까지 우리들에게 기도할 것을 권면한다. 그러면 기도는 쉬운 것인가? 아니다. 기도를 최고의 노동이라고 하였다. 또 기도는 진액을 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기도에 성공하면 나머지 부분은 성공한다. 질병이 감기에서부터 시작되듯이 모든 신앙의 문제는 기도가 없는데서 시작이 된다. 그러면 일군 된 바울에게 기도의 모범을 찾아보자.

<!--[if !supportEmptyParas]--> <!--[endif]-->

1. 기도의 태도 (11-15)

1)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기도하였다. (15)

그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역사하신다. 20

그 하나님은 우리의 간구를 응답하신다. 20

그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을 알고 계신다. 20(4:6-7)

그 하나님은 우리의 간구 이상의 것을 채워주신다. 20

그러므로 죄인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특권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2)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다. (15)

유대인의 기도모습은 세 종류이다.

(1) 서서 기도함: 이것은 보통기도이다.

(2) 무릎을 꿇고 기도: 간절한 기도이다. (22:41-주님의 기도의 본)

(7:59-스테반의 기도)

주석가 렌스키(Lenski)는 말하기를 기도하는 동안 몸의 자세는 중요하다. 왜냐하면 몸의 자세는 하나님을 향한 영혼의 태로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릎을 꿇는 것은 겸손한 간청을 의미한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2. 기도의 내용

1) 속사람이 강건하기 위하여 기도하라. (16)

그러면 속사람이 무엇인가? 속사람 (inner man)이란 마음의 숨은 사람이라고 부르는 영혼, 혹은 보이는 몸과 구별되는 보이지 않는 자아를 의미한다. 거룩하고 강건하게 되는 것은 전체적인 지성과 감정과 의지이다. (A, Maclaren) 속사람의 반대는 겉 사람이다. 겉 사람은 죄로 인하여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나 속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주를 영접하여 사는 사람이다. 그런데 죄 성을 가진 겉 사람이 속사람을 괴롭혀 승리하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능력을 받아야한다. 능력이 무엇인가? 권능이다. 권능이 어디서 오는가? 성령으로부터 온다. 그 힘이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권능을 받으라는 것이다.(1:8)

<!--[if !supportEmptyParas]--> <!--[endif]-->

2) 마음속에 성령을 모셔야한다. (17)

17절에 계시게 하시옵고라는 말은 거주하다” “정착(定着)하다” “영주(永住)하여 살다라는 뜻이다. , “계시다라는 말씀은 주께서 평안히 우리 마음에 늘 계시도록 하라는 것이다. (28:20; 14:16; 고전6:19) 그러므로 어떻게 할 것인가? 성령으로 근심하게 말라 (4:30) 성령으로 충만 하자!

<!--[if !supportEmptyParas]--> <!--[endif]-->

3) 영적체험(靈的體驗)을 위하여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여야 한다. (18)

18절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알고라는 말은 이론적이 아니라 체험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알고라는 단어는 이해하다” “인정하다” “자기 소유로 하다라는 의미이다. , 완전히 자기의 소유로 삼는다는 뜻이다. 19절에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 것인지 깨달아야 한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1) 너비란: 그리스도의 사랑이 선민만이 아니라 이방인에게까지 이다.

(2) 길이란: 영원(永遠) 전부터 영원까지이다.

(3) 높이란: 죄인이라도 주()로 인하여 하늘 영광의 자리에 이르기까지를 의미한다.

(4) 깊이란: 하늘로부터 타락한 죄인에게 이르기까지이다. (M, Henry)

성 어거스틴은 십자가(十字架)의 넓이는 사랑을, 높이는 소망을, 길이는 인내를 깊이는 겸손이라고 하였다. 한 마디로 주님께서 죄인들에게 베푸신 무한하신 사랑을 표현한 것이다. 19절에 보면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이 말씀은 죄인 된 자가 충만하여 하나님의 충만한데 까지 이르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령 충만으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하자. 그렇게 되기 위하여 기도하자! 로마의 무덤(카타 콤베) 지하에는 600마일의 무덤이 거미줄처럼 뚫어져있다. 그 속에는 400만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묻혀있다. 그 곳에서 기도로 무장하던 9%의 신자가 로마를 살린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은 순교적인 것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if !supportEmptyParas]--> <!--[endif]-->

4:1-3 성도의 미덕(美德) 1-6

1. 하나가 되는 길이 무엇인가?

1) 겸손이다.(lowliness) (2) 겸손이 무엇인가? 나 자신을 남보다 낮추는 것이다. , 남을 높이는 것이다. 겸손은 자신을 죄인으로 여기는 정직한 태도이다. 겸손은 자신의 한 일에 대해서는 잊어버리는 것이다. 겸손의 반대는 교만이다. 교만은 자신을 드러내며 교회 공동체를 분열하는 악이다. 그러면 겸손의 태도가 무엇인가? 하나님 앞에서 바른 신앙을 소유하는 것이다. 성도와 성도 사이에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은 형제인 줄 알고 하나가 되는 것이다. (2:30)

<!--[if !supportEmptyParas]--> <!--[endif]-->

2) 온유이다.(meekness) (2) 온유가 무엇인가? 겸손이 교만의 반대라면 온유는 혈기의 반대이다. , 하나님 앞에서는 순복이요 사람 앞에는 부드러운 태도이다. 온유가 나약은 아니다. 온유는 강자라고 할 때에도 자기 능력을 억제하고 조절해서 남들에게 부드럽게 섬기는 자세이다. 그러므로 온유은 길들인 야생마(野生馬)를 묘사하기도 한다. , 야생말은 강하지만 주인의 훈련을 받아 힘센 것을 자제한다. 이것을 결코 어리석은 것이 아니다.(5:5) 동물중의 번식을 강한 자가 아니라 부드러운 물고기가 오히려 번식한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3) 오래 참음이다.(인내/ longsuffering) 자신이 당하는 고난을 잘 참으며 분노나 복수(復讐), 원수를 갚는 마음을 갖지 않는 것이다. (2:4; 딤전1:16; 5:11) 인내(忍耐)의 특징은 서두르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다.

4) 사랑이다.(love) (2) 사랑이 무엇인가? 2-3절의 내용이다. 성령의 역사로 참음에서 잘못을 용서하고 성도간의 평안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고전13:13)

5) 용납이다.(forbearance) (2) 용납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관용을 베푸는 것이다. 넓은 마음으로 포용(包容)하는 것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2. 왜 하나가 되어야 하는가?

1) 교회는 평안(平安)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그리고 성령은 하나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아무리 교회에서 기도 많이 하고 충성봉사(忠誠奉仕) 한다고 할지라도 평안이 깨어진다면 교회는 무기력하게 되는 것이다. (9:31)

<!--[if !supportEmptyParas]--> <!--[endif]-->

2) 몸이 하나이기 때문이다. (4)

3) 성령도 한 분이시다. (4)

4) 부르심도 한 소망 안에서이다. (4)

5) ()도 한 분이시다. (5)

6) 믿음도 하나이다. (5)

7) 세례(洗禮)도 하나이다. (5)

8) 하나님도 한 분이시다. (6)

<!--[if !supportEmptyParas]--> <!--[endif]-->

4:7-16 직분 자(職分者)들의 미덕과 실제생활

직분은 누가 주셨는가? 를 바로 아는 것이다. 7절의 은혜란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선물을 의미한다. 선물의 종류는 두 가지이다. 1) 구원의 은혜이다. (2:8) 이 은혜는 믿는 자에게 차별 없이 주신다. 2) 은사의 은혜이다. (고전12:4-11) 이 은혜는 차별이 있다. 8절에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그가는 누구이신가? 그리스도이시다. 그 분이 직분을 주신 것이다. 직분의 배후에는 성령의 역사로 주님이 주신 것이다.(21:15)

왜 주님이 직분을 주셨는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다.(12)

1) 성도를 온전하게 하기 위함이다. 온전이란 완전하게하다. 준비, 연합, 채우다, 에서 온 말이다. 이것은 완성하다. 훈련하다의 뜻이다. , 성도를 바르게 세운다는 말이다. 그러면 성도를 바르게 세우는 일이 무엇인가? (13)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가르치는 일이다.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개혁신학 (Reformed Theology)과 개혁신앙(Reformed Fatah)를 철저하게 교육시켜야한다. 보수신앙과 자유주의 신앙을 구별하는 지혜가 있어야하는 것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종교다원주의(宗敎多元主義)를 배격하여야만 한다. 기독교 이외에도 타종교(他宗敎)에도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성경의 권위(權威)를 무시하는 것이다. (4:12) 과거에 한국의 모 신학자는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교회를 떠나서는 구원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장로교 대소요리문답(大小要理問答)과 유럽개혁교회가 사용하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해설을 중점적으로 교육시켜야한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교회 지도자가 먼저 이것을 습득하고 훈련받은 후에 교회 성도들을 바로 양육하여야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여기서 아는 일이란 (13)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알고 바로 인식하고 이해하라는 것이다. (딤후3:16) 의사가 환자의 병명을 바로 알아야 바로 치료하듯이 영적(靈的)인 문제도 동일한 것이다. 오늘날 현대교회의 문제 중이 하나는 성도를 마씀이 아니라 신비주의와 이단을 적용하여 인간의 방법으로 하려는데 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2) 봉사(奉仕)의 일을 하기 위함이다. (12)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성경에 보면 봉사(奉仕)란 말이 신약에 100 번 이상 나온다. 이 말의 뜻은 하인” “봉사자” “집사에서 유래된 말로 섬긴다는 뜻이다. 섬긴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 직분자는 받은 은혜에 감사하여 즐겁게 봉사하며 다른 사람에게 본을 보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47:1-5)

<!--[if !supportEmptyParas]--> <!--[endif]-->

그런데 오늘날 교회의 문제는 성도가 교회를 섬기기보다는 교회가 자기를 섬겨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프레드릭 스파하임은 말하기를 그리스도의 진정한 제자는 가장 많이 아는 자가 아니라 가장 많이 사랑하는 자이다.”라고 하였다. 영국의 스펄전 목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느 분야에서 종사하든 간에 그들의 마음이 올바른 길로 최선을 다해 빛을 발하면 그것이 곧 하나님께 충성하는 길이다라고 하였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3)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야 한다. (12)

그리스도의 몸이란 교회를 의미한다. , 각자의 재능을 가지고 집을 짓듯이 받은 은사를 따라 교회를 세우라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이다. 무슨 뜻인가직분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비와 온유와 겸손을 본받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잘 하라는 것이다. 오늘날의 문제는 성도가 교회로 모이면서도 교회가 무엇인지 바로 모르는데 있다. (3:1 참조)

<!--[if !supportEmptyParas]--> <!--[endif]-->

3. 직분 자들의 실제생활은?

1) 서로 연합함으로 (연결)질서를 유지하여야 한다. 16절에 연결되고사람의 몸은 하나이다. 그러나 머리로부터 발끝까지 서로 연결되어 한 몸이 되는 것이다. (고전12:12) 가정도 교회도 서로의 연결이 중요하다. 교회가 무엇인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성도들의 공동체이다. 다른 공동체와 다른 것이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공동체인 것이다. 따라서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시다. 머리가 없이는 손과 발이 아무것도 아니다. 머리가 없이는 온 몸통조차 쓸모가 없다.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없다면 교회는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진리이시다. 그러므로 진리로 연합하여야한다. 진리가 없는 것은 슬픈 현상이다. 그리고 행정적으로도 잘 연결되어 있어야한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2) 서로 화평(和平)을 이루어야한다.

수많은 지체들이 서로 연결될 뿐 아니라 조화를 이루어야한다. 각 지체가 자기하고 싶은 대로 하면 불균형의 지체(肢體)가 된다.(고전12:17)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직분은 하나님이 주셨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주신 은사(恩賜)들을 가지고 조화를 이룰 때에 균형 잡히고 건강한 교회가 된다. 그러므로 화평을 위하여 조화를 이루어야한다.(12:18, 14:19)

<!--[if !supportEmptyParas]--> <!--[endif]-->

3) 서로 협력하여 목적을 성취하라 16절에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정상적인 몸을 유지하려면 서로 연결되어야한다. 그리고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한다. 또한 목적을 위하여 협력하여야한다. 만일 하나의 지체가 협력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바로 몸에 문제가 생기고 지속되면 죽을 수도 있다.(고전12:21) 협력이 중요한데 협력을 방해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단(異端)사상이나 자유주의 신학, 종교다원주의(宗敎多元主義),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WCC) 등을 조심하여야한다. 그 이유는 교리의 일치가 아니고 기구의 연합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if !supportEmptyParas]--> <!--[endif]-->

4:17-24 새 사람을 입으라

벗으면 입어야 한다. , 성도는 옛 사람을 이미 벗어버렸기 때문에 옛 사람에 속한 행위를 계속 할 수 없는 것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옛 사람의 특징이 사탄(Satan)의 유혹(誘惑)과 욕심(慾心)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라면 새 사람의 특징은 무엇인가? 23절에 보면오직 너희의 심령(心靈)이 새롭게 되어이다. , 성령의 역사로 마음이 새롭게 되는 것이다. “새롭게란 계속해서 새로워지는 것을 말한다. , 어느 순간만 새로워지는 것이 아니고 지속적으로 새로워져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12:2)

죠지 스윈녹은 말하기를 사람의 눈으로 볼 때에는 삶을 새롭게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여러 가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에는 그 심령이 변화되거나 새로워지지 않는다면 삶이 새로워진 것이라고 전혀 말할 수 없다고 하였다. 무엇을 말하는가?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마음과 생활의 변화가 불가능한 것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그러므로 24절에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眞理)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성경은 말씀한다. 그러면 의와 진리의 거룩함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屬性), 또는 형상(形象)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의()는 신자들 대한 태도이다. 거룩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성격이다. , 성도들은 성령의 역사로만이 창조 때 받았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신앙생활이 무엇인가? 죄로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되찾는 것이다.(3:10; 5:8)

<!--[if !supportEmptyParas]--> <!--[endif]-->

2. 오늘의 문제는 무엇인가?

성령의 능력을 받았다, 혹은 은사를 받았다. 성령 충만하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형상을 닮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새 사람이 되었는가? 성령의 능력을 받은 자이다. 새 사람이 안 되었는가? 성령의 능력을 받지 못한 자이다. “요한 흐프너는 말하기를 믿음은 그리스도인을 만들고 삶은 그리스도인을 증거하고 시련은 그리스도인을 확증하고 죽음은 그에게 면류관을 준다고 하였다. , 삶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된 것을 증거 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언행 심사 간에 새 사람의 냄새가 나야한다. 그러므로 늘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여야한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3. 우리는 기억하자!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선배들이 순교(殉敎)하면서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을 우리에게 물려주었다. 우리들도 성령의 능력을 받아 새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자

<!--[if !supportEmptyParas]--> <!--[endif]-->

4:25-28 성도와 이웃과의 생활

성도의 기본생활 원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는 성령의 역사로 새 삶이 된 자가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생활할 때에 성을 근심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성령을 근심시킨다는 말씀은 (30) 성령을 괴롭게 고통스럽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나폴레옹 장군의 퇴임식에서 한 말은 나는 전쟁에서 진 것이 아니라 내가 믿고 의지했던 동지들의 배신에서 패배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 주인을 섭섭하게 하는 것은 배신이다. 우리 주인 되신 성령의 은혜를 받고도 배신하는 성도가 되지 않도록 힘써야한다. 성도의 신앙생활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

<!--[if !supportEmptyParas]--> <!--[endif]-->

1. 거짓을 버리라 (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거짓이란(18)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난 어둠에서 나오는 생활이다. 그리고 성령을 떠난 옛 사람의 습관이다.(22) 새 사람이 되었다면 거짓을 버려야한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라고 말씀한다. (3:9-10) 그러면 어떤 지식 까지 인가?

<!--[if !supportEmptyParas]--> <!--[endif]-->

4장에서 강조한대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이다.(13) 온갖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아니하는 지식이다. , 거짓된 이단사설(異端邪說)을 버리는 것이다. 이단의 특징이 무엇인가? 거짓을 묘사하며 장식하는 것이다. 어디까지 표현하는가? 하나님과 같이 높아지려는 것이다. (3:1-5; 1:25) 우리는 25절 이하의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이다. 거짓된 것을 하면 나 손해요 남도 손해요 또 주님의 교회가 어려움을 당한다. 그러므로 이단의 거짓된 교리에 넘어가서는 안 되고 그 거짓을 말해도 안 된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2. (忿)을 내지 말라 (26-27)

사람들이기에 생활하다보면 속이 상하고 화가 나며 분내기 쉽다. 그래서 분을 내어도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 분으로 인하여 범죄 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언제 죄를 짓는가? 분을 품고 지속할 때이다. 그러므로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라고 말씀한다. 그러면 분이 무엇인가? 분한 마음이다. , 분심(忿心)이다.

분은 노여움이다. ()를 내는 것이다. 물론 의분(義憤)도 있다. 그러나 본문의 분은 잘못된 분을 의미한다. 분은 육적으로 병()을 발생하기도 하고 병을 키우기도 한다. 영적(靈的)으로는 마귀를 기쁘게 하는 폭탄이다. 그러므로 육적으로 영적으로 큰 손해를 준다. 가정에 불행과 교회의 영광을 가린다. (12:18)

<!--[if !supportEmptyParas]--> <!--[endif]-->

3. 도둑질 하지 말라 (28)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도둑질이 무엇인가? 도둑질은 힘 안들이고 남의 것을 쉽게 얻으려고 하는 잘못된 생각에서 오는 행동이다. 또한 남의 것을 옳지 않은 방법으로 사기(詐欺)치는 것이다. 참조(살후3:6-12)

<!--[if !supportEmptyParas]--> <!--[endif]-->

4:29-32 성도의 경건(敬虔)생활

성도의 경건 생활은 무엇인가? 종교개혁자 요한 칼빈(John, Calvin)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경건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을 아는 성도의 삶은 어떤 것인가?

1. 선하고 은혜로운 말을 하여야 한다. (29) 더럽고 불결(不潔)한 대화는 다른 사람들을 오염(汚染)시킨다. (29)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참조(3:8, 4:6)

<!--[if !supportEmptyParas]--> <!--[endif]-->

2. 악한 감정을 버려야한다. (31)

악독(惡毒)과 노함과 분 냄은 폭력적인 불쾌감을 의미한다. 떠드는 것은 말이 많고 큰 소리로 위협(威脅)하는 것을 의미한다. 비방(誹謗)하는 것은 욕심과 험담(險談)이며 악의(惡意)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음모(陰謀)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선한 감정을 가지고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선하게 살아야한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3. 서로 용서(容恕)하여야한다. (32)

그 이유는 용서하지 않으면 성령을 근심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욕심과 정욕, 거짓말, 부패(腐敗)한 말이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것을 암시한다.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들이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30)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기 때문이다. 부활의 날에는 무덤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이것이 구원의 날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거두신다면 우리는 가장 비참한 존재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if !supportEmptyParas]--> <!--[endif]-->

5:1-14 하나님을 본()받는 생활

어둠의 생활은 무엇인가? (3-7) 반대로 빛의 열매는 무엇인가? (9)

빛의 특징이 무엇인가? 빛은 어두움을 노출시킨다. (9, 11) 빛이 어두움을 빛으로 만든다. (13)

하나님을 본받는 생활이 무엇인가?

1) 착함이다.(9) 이 착함은 악의 반대인 선을 의미한다. 이 선의 동기는 사랑에서 나와야 한다. 왜냐하면 사랑할 때에 착하고 선한 열매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다.(10:18) 우리는 계명을 지켜야한다. (19:17-) 계명이 무엇인가? 사랑의 계명이다. ()에는 어둠의 길을 걸었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의 길을 걸어야한다. (8:16-20)

이제는 약속의 자녀이다. (9:8; 4:28) 그리고 빛의 자녀이다. (16:8; 12:36) 그리고 우리는 선한일을 위하여 지음 받은 자이다. (2:10)

어두움에서 악을 이기기를 원하는가? 악을 이기는 것은 폭력(暴力)이 아니라 선이다. 그러나 사실 악을 이긴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참조(7:19) 본문 2절에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이 말씀은 사랑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동기를 둔 착한 선이다. (5:16)

<!--[if !supportEmptyParas]--> <!--[endif]-->

2) 의로움이다. (9) ()라고 하는 것은 거짓의 반대인 성실이다. 정직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정직하신 분이시다. (25:8) 바울은 당시 아데미 신()을 섬기며 어두움의 행위를 하는 그들 에게는 (3) 음행과 더러운 이름을 부르지 말라고 하였다. 또한 4절에는 어리석은 말을 하지 말고 감사하라고 하였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5)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빛의 열매를 맺으려면 먼저 선을 행하기 위하여 사랑 안에 거하여야한다. (2) 그리고 거짓을 버리고 정직한 행동에 거하여야한다. 선은 내가 스스로 그리스도 사랑 안에 뿌리를 박고 있으면 되지만 정직이란 행동에는 방해물이 있다. 또한 유혹이 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3) 진실(眞實)이다. (9)

진실이 무엇인가? 진실의 반대말은 허위(虛僞)이다. 하나님은 진실을 말씀하신다. (32:4) 그러나 우리는 헛된 것, 허위에 빠지기 쉽다. 왜냐하면 생각이 허망하고 마음이 허망하기 때문이다. (4:17) 이와 같이 허망(虛妄)하여지면 하나님의 말씀이 멀어진다.(왕하17:15) 사도바울은 경고한다.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6) 또한 헛된 생각, 헛된 마음을 청산하고 진실 된 소망 중에 살라고 권면한다. (14)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진실이 없음을 고백하였다. (7:28) 마지막 때에 사탄은 진실을 버리고 헛된 것에 소망을 두게 한다. 그러므로 깨어 정신을 차리자.

진실한 자는 승리한다. (17:14)

<!--[if !supportEmptyParas]--> <!--[endif]-->

5:15-21 성도의 지혜(智慧) 있는 생활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많은 지혜가 요구된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지혜를 구했다.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다”(3:14)고 하였다. 말세에는 더욱 지혜가 요구된다. (9:10) 종교개혁자 요한 칼빈은 말하기를 하나님을 인도자로 모시는 것이 참 지혜라고 하였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바울은 17절에 그러므로 서론적으로는 15절에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라고 하였다. 어떻게 행할 것인가? 어떻게 걸어갈 것인가? 를 의미한다. 우리들은 나그네 인생이다. 우리들의 인생은 영화필름과 같이 남아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에베소에서는 어떻게 걸어가야 할 것인가를 강조한다.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주었다. (딤후4:7)

<!--[if !supportEmptyParas]--> <!--[endif]-->

1. 세월(歲月)을 아끼라 (16)

세월이란 말에는 두 가지가 있다.

1) 시계로 재는 시간, 기회를(Time)

2) 종교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의 시간인 헬라어의 카이로스(Kailos)가 있다. 본문은 이 카이로스를 의미한다. , 하나님과의 만남의 시간을 의미한다. 그리고 아끼라라는 말은 귀하게 여기라, 사라는 뜻이다. ,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하나님과 나와의 만남의 시간을 아끼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기회가 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기회가 언제 오는가? 소문 내면서 오는 것이 아니다. 이 시간이 은혜 받을만한 때요 구원의 날인 것이다.(고후6:2) , 우리가 듣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그 시간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종말론적인 신앙으로 살아야 한다. 교부 요한 크리소스톰(J, Chrysostom)은 말하기를 부자 집에 강도가 들어와서 재물을 가져가려고 할 때에 생명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내려 버리듯이 하나님 앞에서 내가 영적(靈的)으로 바로 살기 위하여 시간을 아끼는 선한 절약자가 되어야한다고 하였다. ? 세월을 아껴야하는가? 때가 악하기 때문이다. 이 때란? 날들을 의미한다. 악이 무엇인가? 악은 선의 반대이다. 악은 죄가 되는 것이다.

이 악의 표준은 세상 풍속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표준을 둔다.(2:13) 왜 세월을 아껴야 하는가? 우리의 소망이 하늘나라에 있기 때문이다. (살전2:19) 그러면 영적으로 깨어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벧전4:7; 32:6; 55:6)

<!--[if !supportEmptyParas]--> <!--[endif]-->

2. 술 취하지 말라 (18)

그 이유는 방탕(放蕩)한 것이기 때문이다. 방탕이 무엇인가? 낭비(浪費), 저축(貯蓄)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 에베소는 방탕으로 유명하였다. 그러므로 술은 그 사회에서 큰 자랑거리였다. 그리고 아데미 신전에 경배한 후에 술에 취하고 춤을 추고 남,여 간에 음행(淫行)을 하였다. 먼저 우리가 알 것은 예수를 믿는 자는 다 성령을 받았다. (1:13)

<!--[if !supportEmptyParas]--> <!--[endif]-->

본문이 말씀하는 것은 성령 충만 이다. 또한 알 것은 이 명령은 하나님의 권능을 받으라는 것이다. 인간이 주체(主體)가 아니다. 성도는 성령 충만을 갈망하면 된다. 또 간구하여야한다.

4:30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5:3 “성령을 속이지 말라

살전5:19 “성령을 소멸(燒滅)치 말라

12:31 “성령을 훼방(毁謗)하지 말라

<!--[if !supportEmptyParas]--> <!--[endif]-->

무엇이 성령 충만 인가? 한 마디로 성령의 지배(支配)를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성령 충만을 받는가?

1)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라 (2:38)

2) 계속 기도하라 (4:31)

3) 말씀을 애독하라 (10:44)

4) 말씀에 순종하라 (5:32)

<!--[if !supportEmptyParas]--> <!--[endif]-->

5:19-21 성령 충만 받은 자의 결과는?

1. 찬양(讚揚)이 있다. (19)

찬양은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이다. 성령 충만 받은 자는 늘 하나님께 찬양한다. 성도의 변화된 모습이 하나님께 찬양하는 것이다.

2.감사(感謝)이다. (20)

고난 중에도 감사하자 (119:71; 8:10-11,19)

3. 주님을 경외(敬畏)하는 것이다. (21)

4. 서로 섬기게 된다. (21) 복종(服從)하는 마음을 갖는다. 복종은 어렵다. 그러나 성령 충만하면 가능하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if !supportEmptyParas]--> <!--[endif]-->

5:22-33 올바른 부부간의 가정생활

영국의 역사가 기본(Gibon)은 그의 저서로마 제국의 멸망사에서 로마 제국의 멸망 원인의 하나를 가정생활의 문제로 보고 있다. 그러면 왜 가정이 이같이 중요한가? 흠즈(Humzu)는 말하기를 가정은 힘없는 나그네의 피난처와 안식처인 것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모든 문제들로 가득한 인생의 바다 위에서 요동을 받다가 행복스러운 내 가정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무한히 즐거운 사실이라고 하였다. 또한 종교개혁자 요한 칼빈은 사회가 그룹들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것은 참여자들이 상호 의무를 갖는 곳이다라고 하였다.

첫째멍에는 남편과 아내의 결혼이요

둘째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이며

셋째는 주인과 종들의 상하관계이다.

본문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다른 어떤 관계보다 더 중요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남자와 여자를 만드신 것이다. 그 관계를 남편과 아내로 두신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남편과 아내의 결혼관계는 아내의 순종과 남편의 권위가 잘 조화를 이루고 제 자리를 찾을 때에 행복해 질수 있다는 것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그래서 윌슨(Wilson)은 분명히 결혼약정에 대하여 순종을 헌신의 문제로 권위를 사랑의 표현으로 만든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하였다. 본문은 그 관계를 다른 면에서 설명하고 있다. , 남편과 아내,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1. 아내들에게 (22)

갈라디아서에 보면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니라(3:28-)

이 말씀에서는 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창조질서(創造秩序)의 관계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고전11:3)

<!--[if !supportEmptyParas]--> <!--[endif]-->

즉 하나님의 형상을 받은 것은 평등(平等)할지라도 가정의 질서를 유지하는데는 복종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 정도로 복종할 것인가? 22절에 보면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왜냐하면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됨과 같음이니” (23)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된 것처럼 남편은 아내의 머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복종하라는 것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그러면 어떻게 복종할 것인가?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남편에게 복종하는것이다.(24) ,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한 것은 형식과 습관이 아니다. 할 수없이 의무감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에 감격하여 이 같은 심정으로 복종하라는 것이다. (3:18)

<!--[if !supportEmptyParas]--> <!--[endif]-->

2. 남편(男便)들에게 (25-30)

,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다.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이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아가파오(Agapao)를 사용한다. 이 사랑은 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다. 무조건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이다. , 이 사랑은 주님께서 교회를 위하여 영광의 자리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실 뿐 아니라 십자가상에서 죽기까지 하신 사랑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그러면 왜 주님은 죽기까지 사랑하셨는가? 27절에 보면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29절과 30절을 보면 교회가 주님의 몸이 되기 때문이다. , 분리할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그러므로 남편과 아내의 관계도 분리할 수 없는 사랑이어야 하는 것이다. 다시 28절에서 그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 남편과 아내는 한 몸이니 사랑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라고 말씀한다.

요한 폴 헤르더 (J, Paul, Herder)아내의 결점은 모두 남편의 책임이다.” 라고 하였고 로버트 버튼(R, Burton)훌륭한 남편은 훌륭한 아내를 만든다고 하였다. 아내와 남편이 한 몸인 것은 창조의 섭리이다. 그러므로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24) 우리 주님도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19:5)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아내와 남편은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한 몸이다. 그러므로 내 몸을 사랑하듯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당연하다. (3:19) 그 사랑은 주님이 교회를 사랑하듯이 무조건적이며 희생적인 사랑이어야 한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3. 남편과 아내에게 (31-33)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라고 권면한다. 그런데 본문에는 공동적으로 권면한다. 31절에는 남편과 아내는 한 육체가 될 것을 강조한다. 어떻게 한 육체가 되는가? “그의 아내와 합하여란 말은 꼭 붙었다, 집착하다. 는 뜻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비밀(秘密)이다. 그러므로 이 비밀이 크도다”(32)라고 하였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신 구원역사이다. 이와같이 남편과 아내가 하나된 것도 하나님의 신비(神秘)인 것이다. 처음에는 복종(服從)과 사랑으로 시작하였으나 결론에서는 사랑과 경외(敬畏)로 바꿔서 표현하고 있다. 그러므로 33절에는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고 말씀한다. 부부(夫婦)간에 서로 존경심이 깊어지는 가정은 진정으로 행복하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6:1-4 부모와 자식(子息)간의 가정생활

가정생활은 귀하고도 중요하다. 부부의 관계에 있어서 사랑이 중요하듯이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또한 화목(和睦)이 중요하다. 오늘날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좋은 면도 있지만 반면에 가정으로 인하여 심각한 문제가 많이 발생한다.

(참조 잠17:1)

<!--[if !supportEmptyParas]--> <!--[endif]-->

1.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順從)하라 (1)

그런데 조건은 주 안에서 순종이다. 순종이란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따르다의 뜻으로 본문에서는 자식은 언제나 부모의 말씀을 들을 마음이 준비되어 있어야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주 안에서 순종하라는 것이다. , 부모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을 때에는 순종이 불가능한 것이다. 부모가 예수를 믿지 못하게 할 때에는 부모의 말에 순종할 수 없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왜냐하면 부모보다 하나님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恭敬)하는 것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첫 걸음이다. (5:16) 부모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본다. 그러므로 1절에는 이것이 옳으니라고 하였고 2절에는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라고 하였다. 3절에는 네가 잘 되고 라고 말씀한다. , 1절에 옳으니라고 하였으니 부모님의 순종은 당연한 것이다. 2절에 첫 계명이라고 하였으니 부모 순종은 으뜸이 되는 축복의 약속이다. 뿐만 아니라 3절에는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하였으니 부모 순종이 이 땅에서 여러 가지 축복뿐만 아니라 영원한 하늘의 축복이 있다. (참조 출21:15; 20:9; 30:17)

<!--[if !supportEmptyParas]--> <!--[endif]-->

2. 부모는 자식을 올바르게 양육하라 (4)

1)소극적(消極的)으로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지나친 엄격(嚴格)이나 가혹(苛酷), 편애(偏愛)를 조심하는 것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2)적극적(積極的)으로 양육(養育)하라는 것이다. 교훈(敎訓)이란 자녀를 양육할 때 올바른 징계(懲戒)를 통하여 자녀가 잘못된 것을 깨닫고 잘못된 점을 교정시키라는 것이다. 훈계(訓戒)는 무엇인가? (言語)을 통하여 훈련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기억할 것은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라고 하였으니 그 양육과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에 기준을 두어야하는 것이다. 즉 부모에 대한 순종도 주 안에서 자녀 교육도 주 안에서이다.(23:13-14. 29:15)

<!--[if !supportEmptyParas]--> <!--[endif]-->

6:5-9 종과 상전(上典)의 사회생활

1. 종이 상전에 대하여 (5-6)

구체적으로 생각하면 진실 된 마음을 요구한다. 5절에 성실이란 위선(僞善)이 없는 진실 된 마음이다. 잘못된 행동은? 눈가림이다. (6) 눈가림은 사람을 기쁘게 할지는 모르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신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2. 상전이 종에 대하여 (9) 위협(威脅)을 그치라는 것이다. 어떤 권위의식을 가지고 종을 협박(脅迫)해서는 안 된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6:10-12 영적 전쟁(靈的戰爭)의 성격

1. 영적으로 전쟁하여야 할 우리의 자세 (10-11)

우리는 영적 전쟁의 대상이 누구인지를 바로 알고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바로 영적으로 강건(康健)하여 무장(武裝)하는 것이다.

1) 강건의 비결이 무엇인가?

(1) 주 안에 있어야 한다.

(2) 능력을 얻는 것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10절에 강건하여지고라는 말은 일시적(一時的)이 아니라 지속적(持續的)인 것을 의미한다.

(3) 전신 갑주(全身甲冑)을 입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가장 귀중한 전투복이다. 우리는 이 사탄(Satan)의 궤계(詭計)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허락하신 범위 안에서만 활동하기 때문이다. (1:8) 또 사탄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날이 있다. (20:7) 그러므로 항상 깨어 있어야한다. (벧전5:8)

<!--[if !supportEmptyParas]--> <!--[endif]-->

2. 영적 전쟁의 대상(對象)을 알라 (11)

마귀(魔鬼)의 간계(奸計)를 능히 대적(對敵)하여하고 하였다. 그러므로 믿는 자의 원수는 마귀인 것이다. 마귀가 무엇인가? 복수형(福數形)으로 되어있다. 그 수()가 많은 것을 보여준다. 이 마귀는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다.(9:34) 이 마귀는 이곳저곳으로 유랑(流浪)하고 있다.(12:43) 사탄이란 대적(對敵)이란 뜻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천사가 하나님을 도전(挑戰)하고 타락(墮落)하여 사탄이 된 것이다. 신약(新約)성경에 사탄이란 말이 34회 마귀란 말이 36회 기록되어있다. 그들의 목적은 성도(聖徒)를 유혹하여 타락하게 하는 것이다.(12:9) 그리고 거짓 증거(證據)한다.(8:44) 그러므로 깨어 있어야한다.

(벧전5:8)

<!--[if !supportEmptyParas]--> <!--[endif]-->

3. 영적 전쟁에 대한 착각(錯覺)을 버리라 (12)

사람이 사탄을 앞세워 믿는 자를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영적 전쟁의 대상은 누구인가? 통치자들과 권세들이라고 하였다. 이들은 악한 천사, , 타락한 천사를 의미한다.(14:30) 또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이란 마귀의 많은 부하들을 말한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4. 사탄의 역사는 여러 모양으로 나타난다.

1) 하나님을 향하여 도전하면서 이적(異蹟)과 기사(奇事)을 행한다.(살후2:9)

2) 자기를 숭배하게 한다. 그러므로 성도의 마음을 혼미(昏迷)하게한다.

3) 주님의 일을 방해(妨害)한다.(16:23)

4) 하나님의 말씀을 빼앗는다.(13:19)

5) 거짓 교리를 유포(流布)한다.(딤전4:1)

6)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방해한다.(13:10; 5:17)

<!--[if !supportEmptyParas]--> <!--[endif]-->

6:13-17 영적전쟁의 준비

기본적인 복장

1) 진리의 띠 (14)

허리띠는 힘을 내기도한다. 뿐만 아니라 허리띠에 칼을 차기도 한다. 이같이 허리띠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허리띠는 든든한 가죽을 사용한다. 그런데 본문에 이 허리띠를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라고 한 것은 그 하나님의 말씀으로 행동하여야 할 것을 지적하고 있다.(11:5; 4:15,25) 그러므로 진리만을 주장하고 진리로 행동하여야 하는 것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2) ()의 호심경(護心鏡) (14)

호심경은 심장(心臟)을 보호하기 위하여 입는 옷이다. 심장하면 생명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래서 호심경은 쇠, 구리, 등으로 만든다. 이 의()는 그리스도의 옷이다. 사탄의 공격을 차단(遮斷)시킨다. 그리고 믿음과 사랑의 가슴막이를 의미한다. (살전5:28)

3) 복음이 준비한 신 (15)

평안의 복음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평안의 복음이란 하나님과 죄인들 사이에 막혀있던 담을 허는 복음을 의미한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뜻밖의 분쟁이 일어나는 것을 본다. 이때에 평안의 복음이 요구된다. (12:18) 영적 전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외부의 원수(怨讐)보다 교회의 연합을 방해하는 자가 더욱 무섭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4) 구원의 투구(鬪毆) (17)

투구는 군인이 머리에 쓰는 것이다. 당시 유대인의 투구는 가죽을 만들고 구리 같은 금속(金屬)으로 덮어 단단히 만들었다. 그리고 말총 같은 것으로 장식하였다. 그래서 머리를 보호할 뿐만 아니라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그런데 이 투구는 구원의 투구라고 하였다. 이것을 소망(所望)을 연상하고 있는 것이다. , 구원의 소망을 영적전쟁에 있어서 가장 확실한 승리를 보여준다. 소망이 있는가? 없는가? 에 따라 그의 생활은 좌우된다. (5:3)

<!--[if !supportEmptyParas]--> <!--[endif]-->

5) 방어무기(防禦武器)이다. ()의 화살을 막아내는 보호의 무기이다. 그런데 그 방패를 믿음의 방패라고 한 것은 적의 시험과 유혹을 이기는 방패는 믿음이란 것이다. ,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승리를 하는 것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6) 공격무기(攻擊武器)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17)

방어의 무기가 방패라면 공격의 무기는 검() , 칼이다. 그런데 공격의 무기가 성령의 검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 것은 성령의 검과 하나님의 말씀을 같이 보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4:12-13)

<!--[if !supportEmptyParas]--> <!--[endif]-->

6:18-20 영적 전쟁의 방법(靈的戰爭方法)

기도의 종류 18(祈禱種類)

1) 기도(祈禱): 하나님께 호소(呼訴)하는 일반적인 기도 (참조:딤전2:1)

2) 간구(懇求): 긴급(緊急)한 제목을 놓고 기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33:3)

<!--[if !supportEmptyParas]--> <!--[endif]-->

2. 기도할 자의 대상(對象)

1) 자신을 위한 기도이다.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18) 먼저 자신을 위한 기도이다. (참조: 21:34-36)

2) 성도를 위한 기도이다.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18) 가정의 식구와 형제 그리고 같은 교회 성도들 각 교회와 세계 속에 흩어져 있는 핍박을 받는 믿음의 형제들을 위하여 기도하라는 것이다. (딤전2:1-3; 5:44, 10:12; 56:8; 렘애가2:19)

<!--[if !supportEmptyParas]--> <!--[endif]-->

3) 교역자(敎役者)를 위하여 (19)

<!--[if !supportEmptyParas]--> <!--[endif]-->

3. 기도의 방법 (18)

1) 항상 기도하자 (살전5:17; 삼상12:23) 그러므로 영적 승리(靈的勝利)를 위하여 항상 기도로 무장하여야한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2) 성령 안에서 기도하자 (18) , 성령의 지배를 받으며 기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내 생각대로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3) 깨어 기도하자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18) 깨어는 잠자는 상태의 반대말이다. 영적으로 잠자는 것은 시험(試驗)에 들기 쉬운 상태이다. (24:25, 26:41. 13)

<!--[if !supportEmptyParas]--> <!--[endif]-->

6:21-24 진실한 일꾼

바울은 자신의 사정(私情)을 진실한 일꾼 두기고에게 알린다. 두기고는 누구인가?

사랑을 받은 형제이다. (21)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교회와 성도들에게 사랑을 받아야한다. (2:24-30)

<!--[if !supportEmptyParas]--> <!--[endif]-->

2. 진실한 일꾼이다. (21)

그리스도인에게 진실은 생명이다. 진실은 충실과 성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변함없이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자. “변함없이라는 말은 부패함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주님의 은혜가 항상 우리들에게 함께하기를 바란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