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에게 맡겨 주신 사람들

본문 요17:6-10

조성모 목사

 

서론:

 

현대는 전환하는 위기의 시대로써 진리가 불투명한 다원화된 삶을 살아갑니다. 구원을 얻는 것은 오직 예수 이름이 아니고라도 구원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혼돈의 시대입니다. 종교개혁자 요한 칼빈(John, Calvin)우리는 그리스도 밖에서 구원을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강조하였습니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하십니다. 그 기도는 예수에게 맡겨 주신 자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그러면 예수에게 맡겨 주신 사람들은 누구를 의미합니까?

 

예수의 제자뿐 아니라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는 모든 자들입니다. 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 내었나이다여기서 내게 주신 사람들이란 말씀은 창세 전에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들을 의미합니다. (1:4) 우리가 선택을 받은 것은 우리의 공로나 선행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서 선택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오직 예수 이름으로만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4:12)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2:3)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과 사랑으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을 받았습니다. (1:7) 이 사랑과 은혜는 온 우주 만물과도 바꿀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들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8:29-30) 고 증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세전에 선택하시고 그의 피로 구속하십니다. 그리고 우리 자들이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의롭다고 선언하십니다. 최종적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될 때에는 우리가 영화롭게 된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2.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들입니다. 8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신앙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초대교회의 이단 아리우스 (Arius)는 예수는 인간처럼 피조물로 지음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6:16)라고 증언합니다. 이런 신학논쟁에서 아타나시우스가 승리하였기에 우리가 신앙고백을 바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의심이 많았던 제자 도마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20:28)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요일5:10)라고 하였고 19절에는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라고 증언합니다.

 

우리는 중간지대에 거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든지 아니면 사탄에게 속하든지 둘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알기 전에 우리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것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 일입니까?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13)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난 이후에는 주님의 나라로 옮김을 받은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들입니다. 10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 자신은 얼마나 부족한지 모릅니다. 어떻게 감히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는 말입니까? 우리들은 무지하고 미련하며 허물과 실수가 많은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것입니까?

그러나 미약한 우리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영광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171절에는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소서라고 우리 주님은 기도하십니다.

 

이 말씀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의 최고 대상자이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우리 구주께서 당신을 믿는 자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신 자들을 보존하여 달라고 간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5절에는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십니다. 영광이라는 헬라어는 독사입니다. 독사는 사람을 헤치는 뱀이 아닙니다. 이 말은 영광” “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빛이십니다. (8:12)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합니다. 우리는 죄악에서 방황하는 자들을 주님께로 인도하여야 합니다.

 

주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것입니까?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영광의 빛인 십자가를 통하여 주님을 믿고 나왔기 때문에 영광스럽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요 부패하고 냄새나고 악성과 죄 성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고 증언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이라니 얼마나 감격스럽고 가슴이 벅찬 일입니까?

 

우리 주님은 말씀합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10:27-28)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생은 생명이요 구원인 것입니다. 이것을 세상의 무력이나 칼로 빼앗을 수가 없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강하고 담대 합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의 시각으로 보면 십자가는 부끄러움과 멸시의 상징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이나 우리들도 막상 고난이 닥치면 장담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언제라도 좌절하고 넘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목격한 후에는 우리 주님의 증인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담대하게 선포하고 그의 이름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삶에 있어서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과 말씀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듣는 자들은 구세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고 영혼을 구원하는 것은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우리에게도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미약하고 부족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신앙을 날마다 고백합시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여 한 영혼이라도 주께로 인도합시다.

 

십자가의 군병으로 십자가의 영광을 빛을 드러냅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우리 자신에게도 은혜와 기쁨이 충만하시기를 존귀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