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적 은혜

본문 마태20:1-16

조성모 목사

 

서론

우리 주님은 천국을 포도원으로 비유하십니다. 포도원은 교회이며 포도원에서 일하는 것은 품꾼에겐 큰 영광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죄로부터 구원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영적인 일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영적으로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전이나 현재나 개인적으로 사람들을 부르시고 신령한 복을 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를 의미합니다. 마치 장터에서 놀고 있는 자들을 품꾼으로 사용하시기 위하여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하게 하시는 주인과 같습니다. 장터에서 놀고 있는 자들은 아직도 구원에 이르지 못한 자들입니다.

 

, 자신의 구원에 대하여 깊은 인식을 하지 못한 사람들이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지 못한 자들인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포도원을 가진 주인이십니다. (5:1-2) 오늘 이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에 대하여 생각하며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1. 우리는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해야 합니다. 2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제 삼시(3)와 제 육시(5)와 제 구시(5)와 제 십 일시(5)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제 삼시는 한국시간으로는 오전9시입니다. 제 육시는 정오12시입니다. 오전부터 오후 늦은 시간 까지 품꾼들을 포도원으로 들여보냅니다. 우리 주님은 모든 사람들이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사람들의 신분이나 지식이나 능력도 묻지 않으시고 다함께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들어간 사람은 한 시간 밖에 일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님은 들어가 일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지나간 시간이나 잃어버린 시간에 대하여는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 주님은 과거를 묻지 않으시고 현재를 물으십니다. 현재 포도원에서 일하고 있는가를 관심 있게 보십니다. 6절에 보면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즉 그들은 고용되기 까지는 장터에서 놀고 있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은 일하도록 창조된 것입니다.

일하지 아니하고 사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습니다. 하루 종일 일하지 아니하고 서있는 것은 게으름의 상황이요 이것은 하나님께 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천국 일꾼들은 잠시라도 빈둥거리며 시간을 낭비하여서는 안 됩니다. 종교개혁자 요한 칼빈(J, Calvin)의 동료들이 그에게 사역과 특히 밤에 연구하는 일을 줄이라고 말하자 그는 그들에게 주께서 오셔서 내가 게으름 피우고 있는 모습을 보시면 좋겠습니까? 라고 반문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 구주의 보혈로 사신 존재임으로 잠시라도 빈둥거리지 아니하고 생명 바쳐 일하고 충성하여야 할 것입니다.

 

2. 우리는 하나님과 정확한 정산을 하게 됩니다. 8-9

우리 주님은 제 삼시에도, “제 육시에도 9에도 사람들을 불러서 포도원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그리고 제 십 일시에도 사람들을 불러 포도원에 들여보내십니다. “제 십 일시는 오후 5시이고 결산의 때입니다.

 

그렇지만 결산하는 시간일지라도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하는 것은 특권이요 은혜인 것입니다. 포도원 주인이 품꾼에게 그 한 시 간 동안에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서로 다르더라도 그 품꾼만이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하라는 것입니다.

 

8절에 저물매라는 단어는 오후 여섯 시를 가리킵니다. 우리 주님은 사람들을 은혜대로 부르십니다. 먼저 부름 받은 자도 있고 중간에 부름 받은 자도 있고 나중에 부름 받은 자도 있습니다. 그들의 고용조건은 하루를 일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하루의 일에 대해서만 품꾼을 고용하고 정산합니다. 우리 인생의 기간은 낮입니다. 밤에는 잠을 자고 휴식해야 합니다. 아무리 인생의 날이 긴 것 같지만 사실은 짧습니다. 우리의 일은 수 십 년, 수 백 년의 일을 한꺼번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고 은혜를 유지하는 것뿐입니다.

 

본문 2절에는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한 데나리온은 보통 하루 품삯이고 로마 군인들도 하루에 한 데나리온을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도 품꾼들에게 한 데나리온씩 약속한 것을 그대로 지켜 정확하게 정산합니다.

 

자비하신 주님은 정산할 때에 처음부터 일한 자부터 하지 않고 나중에 온 품꾼들부터 부르십니다. 그 이유는 제 십 일시에 격려를 주기 위한 것입니다. 오전에 포도원에 들어가 일한 사람은 하루 종일 일하였습니다. 저녁에 들어간 사람은 한 시간만 일한 것입니다. 품삯을 주는데 한 시간 일한 사람에게도 한 데나리온씩 줍니다. 아침부터 일한 사람들은 혹시 다섯 데나리온을 줄 것으로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동일하게 한 데나리온씩 줍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한 품꾼들에게 비록 한 시간 밖에 일하지 못한 자에게도 하루 품삯을 주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주권적인 은혜로 주시는 보상 일뿐인 것입니다.

우리는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는 것입니다. 비록 짧은 한 시간의 일이라고 할지라도 주님이 인정하신다면 그것은 값없는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애의 남은 시간을 최선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고 봉사합시다. 성도의 수고는 주 안에서 헛되지 않습니다. (고전15:58) 우리 주인의 의도는 품꾼들에게 은혜로 일하게 하였으니 은혜로 생각하고 은혜로 받으라는 마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 우리 구주를 위하여 남은 생애를 죽도록 충성합시다.

 

3. 은혜로 구원받았으니 은혜로 봉사합시다. 10-12

 

은혜로 봉사하면 감사 할 것 뿐입니다. 천국에는 원망과 불평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은 죄가 됩니다. 11절에 보면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원망은 자신의 대우가 불공평하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마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온 탕자의 형과 같습니다. 자신의 수고와 노력을 알아달라고 자랑하는 자인 것입니다. 주인은 불평하는 자들에게 말씀합니다.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13)

 

주인은 품꾼을 친구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는 전혀 불의가 없는 것입니다. (3:5) 왜냐하면 창조주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죄인이었던 우리들이 값없이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본문 14절에 보면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얼마나 중요한 말씀입니까? 나와 약속한 것이 두 데나리온이 아니고 한 데나리온이 아니냐? 그러니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더 주고 덜 받고 이것을 신경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주권적인 은혜인 것입니다. 처음에 약속했던 그 본래의 마음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절대적인 관계입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상대적인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무익한 종이기 때문에 받은 은혜만도 감사할 뿐입니다. 그런데 덤으로 수고의 품삯까지 주시는 것은 플러스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타락한 죄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은 선한 일인 것입니다. 천국은 찬양과 감사만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건강해도 병들어도 감사뿐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도록 부르심 받은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봉사하는 모든 일들은 우리들에게 은혜와 복이 됩니다. 우리가 충성하였기 때문에 직분을 맡기신 것이 아니라 충성할 것으로 아시고 직분을 맡기신 것입니다. 우리 구주와 밀접하게 교제하기 위하여 몸과 마음과 시간을 아끼지 아니하고 수고할 때 주님과 동행하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동역자인 것입니다.

이 은혜야 말로 우리 구주의 십자가로 보증한 은혜인 것입니다.

 

결론

 

천국은 일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인 포도원에서 일하는 것은 우리의 특권입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일하는 것 그 자체가 은혜인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 주님이 일을 맡기지 아니하신다면 허무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충성할 것으로 아시고 사명을 주셨으니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충성합시다. 우리는 오직 충성과 헌신 감사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인 것입니다. 형통한 일을 만나도 은혜요 곤고한 상황이 있어도 모두가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만 있으면 영혼이 소생하고 기쁨과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은혜롭게 감당하고 가장 귀하고 값진 구원을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