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심판대

본문14:7-12

조성모 목사

 

서론:

우리 인생은 한 번 왔다가 흙으로 돌아갑니다그런데 중요한 것은 어디로 돌아가느냐 하는 것입니다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초청을 거부하는 자들은 지옥으로 떨어질 것입니다.그러나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고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받은 자는 본향인 천국으로 돌아갈 것입니다이것이 웬 은혜요 웬 사랑이며 축복인 것입니까?

 

우리 주님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10:38) 그러므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은 주님 앞에 서는 그 날까지 십자가를 지며 주를 위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그렇다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할 우리들의 삶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 것입니까?

 

1. 우리 자신을 위하여 살지 말아야 합니다.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사람들 가운데 크고 작음에 차이는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인간 자신을 위하여 살지 말라는 말씀인 것입니다매튜헨리 목사는 말하기를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신의 이름을 포기하지 못하는 자는 누가 보더라도 이기주의 자 이다.그는 참 기독교의 기초에 위배되는 사람이다라고 증언합니다.

 

사도바울은 말씀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2:20)고 말씀합니다.

 

바울의 삶 자체가 자신의 이름과 명예와 욕망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위하여 산다는 것입니다그러기에 그는 그의 모든 정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입니다우리가 날마다 때때로 생기는 정욕과 욕심과 혈기와 분노를 죽일 때만이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 수가 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왜냐하면 우리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우리 자신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과 기분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오직 살아계신 하나님만이 우리 인생을 통제할 수 있는 분이신 것입니다우리는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선을 행하면서 살아야 합니다우리 인생의 제일 되는 본분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기쁘시게 하면서 사는 것입니다이러한 삶을 살아야 목적은 그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나고 우리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2. 삶과 죽음(생사관)을 모두 주께 맡기고 살아야 합니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그의 것이로다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바울은 사는 것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는 것도 주를 위하여 죽는다고 말씀합니다이것이 그의 삶의 목표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과 죽음의 모든 선이 만나는 중심점이기 때문입니다우리 구주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이후에는 모든 우주 만물과 인간의 생사를 주장하는 권한을 부여받으신 것입니다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주권을 인정하여야 하는 것입니다내가 자연스럽게 죽든지 아니면 갑자기 죽든지 이 모든 것이 우리 주님의 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도 우리 주님과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죽는 것임을 기억하여야 합니다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인생의 모두요 전부가 되는 것입니다우리가 않고 일어서는 것 모든 행위가 우리 주님의 섭리 가운에 일어나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삶 자체를 주를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우주의 통치자이시며 산 피조물과 죽은 피조물을 포함한 만유의 주입니다. (10:36) 우리 구주만이 산 자들을 다스리심으로써 그들의 주님이 되시고 죽은 자들을 받아들이고 다시 살리심으로써 그들의 주님이 되시는 것입니다이것은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 구주께서 낮아지심에 대한 보상으로 주신 권세인 것입니다. (2:8-9) 그리고 그 분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28:18)

 

3.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왜 우리가 형제를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까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하기 때문입니다이 말씀을 우리 자신들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야만 합니다교회 공동체 안에는 믿음이 강한 자와 약한 자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약한 자가 강한 자를 비판해서는 안 됩니다비판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크리노입니다이 말은 분리하고 판단하고 골라내는 것을 의미합니다남을 비판하는 것은 결국에는 분리주의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그리고 남이 단점만을 골라내면서 판단하게 되는 것입니다우리는 이것을 조심하여야만 합니다뿐만 아니라 믿음이 강한 자가 연약한 자를 업신여겨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업신여기다 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엑수데네오)입니다이 말은 멸시하다박대하다경멸적으로 대우하고 거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그러므로 이런 언어와 행동을 철저하게 자제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그 날에 우리 자신들이 교만한 말로 심판을 받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바울은 말씀합니다.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딤후4:1)라고 증언합니다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나라에 먼저 들어간 자들과 이 지구촌에 있는 모든 자들을 심판하실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 것은 우리 구주를 믿는다고 하는 자들이 서로 갈등하고 분열하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심지어 나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여 매장시키고 죽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남을 죽이면 내가 반드시 죽습니다우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26:52) 피를 흘리면 자신도 피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형제가 형제를 서로 심문하고 정죄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행위인 것입니다.

 

우리가 짧은 인생을 살면서 언젠가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성경은 말씀합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 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5:10)고 말씀합니다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심판자로서 권위와 권능을 가지시고 우리들의 행위를 따라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실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이면서 종말에 심판주가 되심을 증거하는 말씀인 것입니다성경은 말씀합니다.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1:7)

 

우리 구주를 십자가에 못 박고 조롱하던 자들이 모두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초청을 거부하고 완악하게 되어 지옥에 들어가게 된 자들이 모두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참으로 두렵고 떨리는 말씀입니다그보다 더 두려운 것이 있습니다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모든 혀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하나님께 자백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11)

 

여기서 자백한다는 단어는 헬라어로 엑소몰로게오입니다이 말은 찬미하다는 뜻입니다하나님의 심판대인 참된 심판의 보좌에서 모든 혀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미하고 그 분을 만왕의 왕으로 만주의 주로 높일 것입니다모든 혀가 심판대 앞에서 찬미할 때가 올 것입니다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12직고한다는 말은 하나님께 각 사람이 진술한다는 뜻인 것입니다.

 

우리는 기억하여야 합니다사람이 죄를 참기도 힘들지만하나님이 죄를 참기는 훨씬 더 힘들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죄악을 바라보기에는 하나님의 눈이 너무나도 순수하시기 때문입니다.

 

결론:

 

우리의 인생은 긴 것 같지만 짧습니다인간의 능력과 지혜와 경험이 많은 것 같지만 이것만으로는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습니다지금부터라도 나 자신을 위하여 살지 말고 오직 우리 구주를 위하여 삽시다형제의 허물은 덮어주고 용서하며 삽시다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는 날에는 흠과 티와 부끄러움이 없이 서서 우리 주님 앞에 칭찬과 존귀와 영생의 복과 빛나는 의의 면류관을 받고 영광 돌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