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서 일깨우는 영적 리더의 조건

[서평] 루스 헤일리 바턴 <영혼의 리더십>(IVP)



첫사랑은 철들지 않는다.' 그래서 첫사랑은 늙지 않는다. 영적인 법칙에서도 동일하다. 회심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향한 열정으로 불타오를 때 사람들은 헌신한다. 순수함과 정직함으로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드린다. 영적 첫사랑은 기존의 가치관과 세계관의 변화로 인해 삶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무덤덤해 지고, 식상해기기 마련이다. 좋은 말도 자주 들으면 잔소리가 되듯, 은혜로운 각성과 도전들도 반복되면 식상해지는 법이다. 이 때 리더들은 위기에 빠진다. 더 이상 은혜도 감동도 없이 삶의 의미에 회의를 느낀다. 유일한 대안은 첫사랑의 시공간으로 되돌아가야한다. 그때만 생각하면 마음이 설레고, 울컥해지는 첫사랑을 되찾아야 한다. 이 책은 회의에 빠지고 길을 잃은 리더들을 위한 처방전이다. 첫사랑을 회복하고 재소명을 받기까지의 여정을 담았다.

저자인 루스 헤일리 바턴은 탈진한 리더들을 다시 세우는 사역을 오랫동안 지속해온 베터랑이다. 그녀는 스스로 선교단체와 교회에서 무리한 사역을 감당해 오다 탈진을 경험한다. 그 후 그리스도인의 삶은 헌신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함을 깨닫는다. 영적 리더는 사회가 요구하는 리더와 다른 차원에서 다루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성경이 말하는 리더를 살펴보기 시작한다.

이러한 연구 결과가 세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첫 책은 <하나님을 경험하는 고독과 침묵 훈련>(SFC)이란 제목으로, 두 번째 책은 살림 출판사를 통해 <영적 성장을 위한 발돋움>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앞 두 권의 책이 리더에 대한 영적 자격을 다루었다면, 이번 책은 '모세'라는 구약의 걸출한 영적 리더를 통해 성경이 말하는 영적 리더의 원리를 가르쳐 준다. 모세를 건너뛰고 리더십을 논하기를 힘들 것이다.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저자가 말하는 리더는 어떤 존재일까?

도망가기

리더는 언제 길을 잃는가? '소명'이 '일'이 될 때이다. 소명을 받을 때 하나님 앞에 수많은 헌신의 다짐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짐이 된다. 한 번 시작한 일에 관성(慣性)이 붙어 하지 않으면 불안해지고, 초조해진다. 탈진하기까지 끊임없이 일하고 바쁘게 뛰어다닌다. 테드 로더는 그 징후를 이렇게 표현한다.

" 거룩하신 분이여, 당신께 드리고 싶던 말이 있지만 할 일이 많아서요. 공과금도 내야 하고, 예약도 해야 하고, 모임에도 나가야 하고, 친구들도 접대해야 하고, 빨래도 쌓여 있고, 그러는 사이에 드리고 싶던 말을 잊어버렸습니다. 막 말하려던 참이었는데…"(43쪽).

청년 모세가 실수했던 부분은 바로 이곳이다. 열정으로 소명을 감당하기 원했지만, 하나님의 때는 아니었다. 덜 익은 열매는 풋내가 나듯, 덜 성숙한 모세는 미숙했다. 모세가 '고독 가운데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빚어지기 전, 그의 리더십은 미숙했고, 훈육을 받지 못한 상태였고, 그의 길을 가로막는 사람들을 파괴'(55쪽)했다. 초기의 열정이 가진 위험은 목적으로 수단을 정당화시키는 것이다. 하나님을 뜻을 자신의 방법으로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셉이 그랬고, 야곱이 그랬던 것처럼 모세도 역시 동일한 실수를 반복한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위해' 일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고 착각한다. 영적 리더는 일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로 이끌어야 한다. 모세는 자신 안에 숨겨진 분노를 소명으로 착각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리더로 인정하지 않았다. 모세는 곧장 광야로 도피한다. 영적 리더가 되기 위해서 첫 번째 해야 할 일은 '누군가를 어디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속박에서 자유로 인도 받'아 탈출해야 하고, '다른 사람을 자유로 인도하기 전에 모세 스스로 자유를 경험해야'(73쪽)한다.

"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저 아래에 도사리고 있는 어두운 것을 알아차린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물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빨리! 이것이 정확히 모세가 취한 행동이다. 그는 의식의 표면 아래에 도사리고 있다가 힘차게 말고 나오는 어두운 것을 언뜻 보았다. 자신의 미숙하고 다듬어지지 않는 리더십의 파괴력을 일견하고 너무나 두려워 고독 속으로 달음질쳤다"(51쪽).

직면하기

모세는 고독한 광야로 도망한다. 광야에서 무엇을 발견하는가? 출 2:2에 보면, '타국 땅에 거하는 외국인이었다.'고 자신을 표현한다.(63쪽) 그동안 자신이 가진 프라이드, 자존심을 내려놓는 순간이다. 우리는 우리가 소유하고 경험한 것들이 내 자신이라고 쉽게 확신한다. 그러나 리더는 자신의 성과나 업적으로 자신을 포장하지 않는다. 탁월한 리더는 자신의 무능을 솔직히 고백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얻기 위해서 먼저 버려야 한다.

흙탕물을 유리컵에 담으면, 처음에는 뿌옇지만 나중에는 부유물들이 컵 아래로 침전되면서 맑아진다. 우리의 영혼도 마찬가지다. 광야에서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면, 자신 안에 아무 선한 것도 없고, 쓸 만한 것도 없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동안 자신이 자랑하고 사랑했던 영혼의 무질서가 천천히 가라앉게 된다. 저자는 이것을 '광야에서 일어난 회심'으로 표현한다.(69쪽) 파스칼이 팡세에서 지적한 대로 습관은 제2의 천성이 아니라 '부패한 본성의 확장'이라는 말을 회심의 순간에 깨닫게 된다.

고독 속에서 리더는 '자신의 분주함을 믿지 않'으며, '자신의 장애를 서서히 깨달아 가면서 우리의 안전에 대한 욕구와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하나님과 타인들을 이용하려는 한 모든 수단이 드러'나는 것을 발견하며, 심지어 '목자가 굶주릴 때 양들을 잡아먹을 수 도 있다는 것을 깨닫'(69쪽)는다. 직면이 치유다. 직면하지 않고 치유는 불가능하다. 모세는 광야에서 환상을 버리고 자신과 정직한 대면에 천착한다.

자신을 직면한 다음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주목해야 한다. 현대 교회 목사들처럼 바쁜 사람이 또 있을까? 설교 준비할 시간도 없는 기막힌 일과 속에 함몰되어 있다. 모세가 불타를 떨기나무에 주의를 기울인 것처럼 리더들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목표에만 눈을 고정한 채 삶을 질주하'고, 비전을 향하여 '먼 미래의 일에 관심을 쏟'게 되면 '현재 일어나는 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할뿐 아니라, '광야에서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선물을 놓치고 만다.'(85쪽)

영적 리더는 자신의 계획을 성취하지 않는다. '우리 자신의 소리가 아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93쪽)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면 신을 벗지도 않으며, 우리가 거하는 일상이 거룩한 땅이 될 수 없다.

말씀 듣기

소명은 말씀 듣기다. 출애굽기 3:4에 보면 불타는 가시떨기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신다. 광야의 사십년은 모세에게 잃어버린 시간이며, 방치된 시간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에게 '마침내 말을 걸어 오'(99쪽)신다. 말씀은 공허와 혼돈 속에서 충만과 질서를 창조한다.

" 하나님은 역설적이게도 과거부터 형성되어 온 자기 모습을 끌어안음과 동시에 넘어서라고 모세를 이끄신다. 하나님은 모세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것을 넘어서 그의 참된 자아를 더 이상 숨기지 말고 드러내라고, 온전한 정체를 회복하고 숨어 있던 곳에서 당당히 나오라고 하셨다. 이것은 숱하게 들어온 물음이지만, 40년이 지나고 이제야 마침낸 모세에게 때가 찾아온 것이다"(100쪽).

소명의 순간, 서 있는 그곳은 '거룩한 땅이 되고,' '마침내 우리 인생 전체가 이해되기 시작한다. 이 순간까지 우리를 이끌어 오신 하나님의 경륜을 새로이 깨닫'게 되고, '인생에 대한 큰 그림'이 보이고, '이해되지 않았던 개별적인 사건들, 너무 가혹하고 생뚱맞고 수치스러워 보이는 사건들이 전체 이야기 속에서 드디어 제자리를 찾'(101쪽)게 된다. 말씀을 듣기 전 행동하지 말라. 보내지 않았는데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포하지 말라. 거짓 선지자들이 하는 짓이다. 모세의 소명은 또 다른 모세가 될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것이다.

나가면서

모세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이끌어 내는 과정과 광야에서 인도하는 여정에서도 배울 점이 많다. 리더의 힘은 광야에서 나온다. 7장에서 '한계를 인정하기', 8장의 '리더의 영적 리듬'은 하나님과의 친밀감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보여 준다. 특히 10장에서는 광야로부터 오는 '고독'이야말로 사역을 감당하는 힘의 원천이라고 말한다. 존재의 민낯이 드러나는 광야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모세의 전 생애는 두고두고 곱씹을 교훈이 많다. 외적 성장과 일 중독에 빠져 하나님을 잃어버린 이 시대의 영적 지도자들에게 리더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다시 첫사랑을 회복하고 싶은 이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일 중독증에 걸려 쉼이 필요한 목회자들에게도 추천한다.


뉴스앤조이 인용